[쿠키 사회]
지난 1월8일 남중국해상에는 비를 동반한 강풍이 몰아쳤다. 파도 높이는 4∼5m, 풍속은 초당 20m에 달했다. 바다는 31년 동안 배를 탄 베테랑도 진땀을 흘릴 만큼 거칠었다.
정유 4만t을 싣고 필리핀을 출발해 싱가포르로 가던 STX팬오션 소속 에이스(ACE) 7호 선원들은 지독한 '황천항해(荒天航海·비바람이 거센 바다 위의 항해)'라며 혀를 내둘렀다. 차상근(54) 선장은 바짝 긴장한 채 바다를 응시했다.
오전 8시25분쯤 무전기에 '빈 딘 리버호 침몰 중'이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구조 요청 메시지가 들어왔다. 발신지는 15마일(1마일은 1.6㎞) 가량 떨어진 곳. 1시간이면 닿는 거리였다.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빈 딘 리버호는 이미 15도 정도 기울어진 채 절반이 물에 잠겨 있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길이 30m, 중량 2000t의 선체는 조각배처럼 요동쳤다. 선원들은 선체에 매달려 있었다.
바다에 뛰어든 선원들은 구명정에 간신히 올라탔지만 거친 물살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갔다. 힘겹게 쫓아가면 구명정이 파도에 밀려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아홉시간동안 계속된 사투 끝에 에이스호 선원들은 탈진 직전의 베트남 선원 14명의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차 선장은 안도의 한숨조차 쉴 수 없었다. 오후 7시가 넘어 어둑해졌지만 실종된 선원 1명이 남아 있었다. 시속 10㎞로 천천히 항해하며 수색하기를 3시간. 갑판에 서 있던 선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떠내려가는 선원이 발견된 것이다. 목숨을 건진 선원 15명은 싱가포르로 가는 배 안에서 차 선장을 뜨겁게 안으며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차 선장은 국제해사기구(IMO)가 선정하는 '바다의 의인'이 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다. 8일 울산항에 닻을 내린 차 선장은 "배를 타는 사람으로 당연한 일인데 되레 부끄럽다"고 말했다.
1955년 부산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차 선장은 바다를 보며 항해사의 꿈을 키웠다. 1978년 한국해양대 부설 해양전문학교를 졸업하고 3등 항해사로 처음 배에 오른 뒤 줄곧 1년에 10개월 이상을 바다에서 생활한다.
오는 10일 홍콩으로 다시 출항하는 차 선장은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로 항상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나에게 버팀목은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이라며 "위험에 처한 베트남 선원 1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남아있는 가족이 겪을 고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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