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을 말하다] 인터넷에 중독된 아이들

[교육,희망을 말하다] 인터넷에 중독된 아이들

기사승인 2009-07-14 17:49:01


[쿠키 사회] 다섯살 창규는 유치원 버스에 오르자 마자 졸기 시작했다. 떠드는 소리에 눈을 뜬 창규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슉 슉-” 소리를 냈다. “야, 뭐해?” 친구들이 묻자 창규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던파 알아? 그것도 모르는 것들이…. 슉 슉-”

던파는 ‘던전 앤드 파이터’의 줄임말. 칼을 들고 사냥하는 인터넷 게임이다. 만15세부터만 할 수 있다.

유치원

창규는 3살 때 한글을 터득했다. 7살 터울의 형과는 “학교 가지 말고 놀자”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며, 창규는 형과 컴퓨터 게임을 했다. 게임도 단 번에 얼마나 잘하는지 “영재가 났다”고 온 식구가 기뻐했다.

어느 새 형보다 더 높은 레벨(게임 속 등급)로 올라갔다.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컴퓨터를 켜서 엄마가 올 때까지 게임만 했다. 엄마 아빠가 부부모임을 하고 늦게 온 날, 창규는 형이 자는 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게임을 하고 있었다.

마우스를 숨겨 놓으면, 창규는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다시 사왔다. 형이 “게임 많이 하면 중독된데”라며 컴퓨터를 끄려고 하면, 창규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형의 손을 물었다. 엄마가 말리면 창규는 울면서 방바닥에 뒹굴었다. 엄마도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우리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일본의 베넷세 교육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3∼6세의 아이 중 일주일에 4일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는 비율은 서울이 40%로 도쿄 4.3%의 10배였다. 광주 송원대학 정아란 교수는 “유아들도 게임에 빠진다는 게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요즘 아이들은 곤지곤지를 배우기 전에 마우스 잡는 법 부터 배우고, 유치원생들 대화의 80%가 게임”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용 게임도 아이템을 빼앗거나 사이버 머니를 모으는 내용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초등학교

인천의 한 재개발지역 초등학교 5학년인 인철이는 수업 시간에 혼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죽여버릴거야. 살인할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선생님께 자주 꾸중을 들었다. 시험만 봤다 하면 90점이 넘는 아이가 왜 이러는지, 속상한 엄마는 인천 서부교육청의 위 센터(Wee Center)를 찾아 학습치료사 심애경씨를 만났다. 심씨는 인철이를 면담했다.

심: 뭐가 제일 하고 싶니.

인철: 친구들과 공원이든 바닷가든 찜질방이든 가서 함께 신나게 놀고 싶어요. 엄마가 한번도 허락해준 적이 없어요. 슬퍼요.

심: 이번 여름 방학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어떨까. 스스로 계획을 짜봐.

인철: 엄마가 벌써 방학에 할 일을 다 짜 놨어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요. 게임말고는.

초등학교 앞의 PC방에 가면 인철이와 같은 아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워록’처럼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게임은 ‘18세 이용가’이지만,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의 주민번호로 아이디를 만든다. 총으로 상대의 머리를 쏘는 ‘서든 어택’은 초등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 3위 안에 꼽힌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해마다 초등학생들이 폭력적인 게임에 접속하는 비중이 커지고, 나이도 어려지고 있다”며 “처음엔 심심해서 시작하지만, 게임 자체의 중독성 때문에 빠져 나오질 못한다”고 우려했다.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하려면 레벨을 올려야 한다. 레벨을 올리려면 잠을 자지 않고 사냥을 해야 한다. 친구와 함께 사냥을 할 땐 혼자 빠져나갈 수 없다. 심씨는 “밤새 게임을 하다 늦잠을 자서 학교에 못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터넷 중독 예방프로그램에 참여한 자리에서도 잠만 잔다. 핸드폰 게임만 하다가 엎드려 잔다. 게임 외에는 의욕도 없고 관심도 없다.

중고교

부모들은 좀처럼 자신의 아이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를 가서 성적이 떨어지고 반항이 심해질 때가 돼서야 병원을 찾는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성원이는 한달에 수십만원을 PC방에 갖다 바쳤다. 집에서 게임을 못하게 하니까 PC방으로 갔다. 돈이 없으면 친구들에게 빌려서 게임을 했다. 고2의 상목이는 아예 가출을 했다. PC방으로 갔다. 밥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잠도 자지 않았다. 18시간 동안 게임만 하다가 엄마에게 ‘구출’됐다.

상목이를 진료한 중앙대병원 한덕현 교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게임 중독으로 찾아온다”면서 “속도를 강조하는 사회 환경이나 입시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난데, 지금 아이들이 게임 말고 어디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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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김지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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