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파경에 언어는 이중고

국제 파경에 언어는 이중고

기사승인 2009-07-20 23:43:00
[쿠키 사회] 서울가정법원의 A판사는 최근 한 중국인 여성의 협의 이혼 사건에서 진땀을 뺐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구사할 줄 모르는 이 여성이 통역도 없이 혼자 법정에 나왔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A판사는 때마침 이혼 절차를 밟으러 나와 있던 다른 조선족 여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근 수년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의 결혼이 급증하면서 이혼 역시 늘고 있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법정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여성들이 또다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을 제대로 몰라 엉뚱한 날짜에 법원에 나오는가 하면 한국말이 서툴러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으면서도 한국어를 제대로 몰라 이혼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 B씨(29)는 2007년 이혼을 당한 줄도 모른 채 6개월 동안 남편과 살았다. 한국어를 몰랐기 때문에 우편으로 받은 법원 서류가 자신의 이혼 소송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 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집에서 쫓겨난 뒤 외국인지원센터에 사연을 호소하고 나서야 이혼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국 여성 C씨(27)는 최근 이혼소송 도중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연결된 통역과 함께 법정에 섰다. 남편이 대동한 변호사와 재판장이 주고받는 얘기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어 통역과 귓속말을 주고 받았는데, 법정에 배석한 법원 직원이 조용히 하라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남편 주장을 알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2년 1774건이던 외국인 배우자와의 이혼 건수는 2004년 3300건, 2006년 6136건에 이어 지난해엔 1만1255건으로 늘어났다.

이런 고충을 토로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민원과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자 결국 가정법원은 20일 이혼소송 당사자들에게 통역 서비스를 지원해 주기로 결정했다. 법원측은 청사내에 통역자원봉사자실을 따로 마련해 이들에게 법률용어 교육도 실시할 방침이다. 이혼소송 당사자들이 받게 되는 통역서비스는 영어 중국어 일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11개 언어다. 법원 관계자는 “외국인 배우자들이 법정에서 언어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없도록 계속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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