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사각지대 놓인 희귀질환 아이들…“치료제 접근성 강화 절실”

치료 사각지대 놓인 희귀질환 아이들…“치료제 접근성 강화 절실”

국내 신약 도입률 OECD 평균 4분의 1 수준
허가부터 급여 결정까지 평균 26개월, 최대 87개월
알라질증후군 치료제 있지만 급여 미적용
“급여 기준 지나치게 엄격…치료 기회 놓치는 환자 많아”

기사승인 2025-07-12 06:00:07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희귀질환 환아의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대현 기자

소아 희귀질환은 환자 수가 적고 치료제 수요가 제한적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 투자 유인이 부족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치료제 개발은 물론 국내 도입과 허가, 보험급여 결정까지 까다로운 규제가 이어져 치료 공백을 야기하고 있다. 희귀질환 환아의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부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주최로 열린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발제를 통해 “희귀질환 환아들의 치료제 접근성 향상은 생명권과 기본권 보장의 문제이며, 지금도 치료시기를 놓쳐 위기에 처한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질환별 유병 인구가 2만명 이하인 질환을 ‘희귀질환’이라고 한다. 희귀질환 환자들은 진단 자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증상 완화를 위한 근본적 치료제가 존재하는 경우는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은 필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 2차적 장애를 앓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실제 2022년 한 해에만 10세 미만의 환아 51명이 희귀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연합회가 매년 시행하는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방문 병원 수는 2.7곳, 소요 기간은 2.9년이다. 치료제가 있음에도 비급여, 미허가 등으로 복용하지 못하는 환자 비율은 50% 이상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신약 도입·급여 비율이 최하위에 속한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의 ‘글로벌 신약 접근 보고서’를 보면, OECD 국가 평균 신약 도입률은 18%인 반면 우리나라는 5%로 약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100개의 신약이 나왔다면 국내에 들어오는 건 5개에 불과한 셈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비급여로 사용해야 한다. 한국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신약 비율은 22%로 OECD 국가 평균(29%)보다 낮다. 48%를 기록 중인 일본, 영국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김 부장은 “지난 12년간 희귀질환 치료제로 허가받은 147개 성분 중 급여 품목은 49%, 산정특례 비대상은 30%대로 암이나 중증질환 치료제 대비 현저히 낮다”며 “OECD 국가 중 한국은 신약 도입 속도가 30위로 하위권이며, 허가부터 급여 결정까지 평균 26개월, 최대 87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아 희귀질환은 조기 진단과 치료가 생존과 삶의 질을 좌우하며, 단순한 의료비 지원을 넘어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와 사회 전체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강화를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신대현 기자

고재성 서울대병원 소아소화기영양분과 교수는 알라질증후군 치료제인 GC녹십자 ‘리브말리액’(성분명 마라릭시뱃염화물)의 건강보험 등재를 촉구했다. 선천성 유전질환인 알라질증후군은 간 내 담도 수가 현저히 적어 담즙 배출에 문제가 발생해 간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알라질증후군 환자는 2021년 기준 136명으로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주요 증상은 만성적 황달, 전신 가려움증, 성장 지연, 심혈관·안과·피부계 이상 등이다. 식약처는 2023년 리브말리액 사용을 허가했지만, 아직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아 환자 가족들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알라질증후군은 환자 수가 적다 보니 관심 부족, 환우회 부재, 신약 개발 소외가 이어지고 있다. 질환이 지속되면 간경화로 진행되고 일부는 간 이식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하다. 간 이식 없이 생존하는 확률은 40%에 불과하며, 10%는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간 이식 역시 면역억제제 평생 복용, 외과적 합병증, 거부반응 및 감염의 위험이 뒤따른다.

고 교수는 “가려움증 완화를 위해 항히스타민제 등 다양한 약물이 사용되고 있으나, 간경화 예방이나 가려움증 개선엔 뚜렷한 효과가 없다. 보조적 영양치료만 가능한 상황에서 담즙산 수용체 억제제 계열의 신약이 출시됐지만,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고가”라며 “국내 급여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치료 기회를 놓치는 환자가 많다”고 짚었다. 이어 “소아기는 치료 개입의 결정적 시기이며, 이 시기를 놓치면 회복 불가능한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소아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 수가 적어 남용 가능성이 낮고, 재정 부담도 제한적이므로 국가가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희귀질환 환아 가족들은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적용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알라질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한 가족은 “약이 있는데 급여화가 되지 않아 비싼 가격이 부담돼 못 쓰고 있다. 약을 못 쓰면 간 이식밖에 답이 없다고 한다”며 “심평원의 느린 급여 결정 때문에 한 아이의 인생에 오점이 생겨선 안 된다. 하루 빨리 약을 쓸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의료·약제 급여화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희귀질환 지원 제도 부족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받아왔다”면서 현실적이고 전향적인 제도 운영을 약속했다. 김국희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심평원의 급여 평가 원칙은 효과가 입증된 약제를 적절한 환자에게 합리적 가격으로 신속히 제공하는 것”이라며 “단순해 보이지만 실현이 매우 어려운 원칙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희귀질환 환자들이 소외받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조속히 받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 당국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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