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만인보 탈고는 이제 물위에 찌 하나 띄운 것일뿐”

고은 “만인보 탈고는 이제 물위에 찌 하나 띄운 것일뿐”

기사승인 2009-07-24 21:58:00

[쿠키 문화] 고은(76) 시인의 역작인 ‘만인보’의 완결은 시인뿐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서도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전 30권으로 남는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내 “시로 쓴 민족의 호적부”,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담긴 ‘만인보’는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난 21일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대림동산에 있는 시인의 집을 찾았다. 1983년 들어왔으니 올해로 27년째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집이다. 호젓한 길이 나 있는 전원에 자리 잡은 시인의 2층 빨간 벽돌집 텃밭에서는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책 냄새가 풍겨왔다. 1층 서재는 물론 작은방과 거실 곳곳에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만권은 족히 돼 보였다. 색이 바랜 옛 책들은 물론이고 이달에 나온 소설들도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쪽에는 2002년 김영사에서 펴낸 약 600쪽 분량의 ‘고은전집’ 38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시인은 요즘 책 읽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시간 외에는 주로 책을 읽고 있어요. (내 문학인생의)전반기에는 책 읽기를 멀리 했는데, 요즘은 책이 폭포처럼 소리쳐 오는 것 같아요.”

-‘만인보’는 어떻게 해서 쓰게 됐나요?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갇히게 됐었죠. 김재규가 있던 방인데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꽉 막혔고, 전구 하나만 달랑 달려 있었죠. 커다란 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극한 상황이다 보니 무언가를 추억하게 됐죠. 살아남는다면 내가 만났던 사람들, 우리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옥은 ‘만인보’의 산실이었죠.”

시인은 그곳에서 ‘만인보’와 93년 완간한 전7권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 등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탈고한 원고에는 어떤 인물이 담겼나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몸으로 겪은 사람들과 그 이전 역사 속 인물들을 반반씩 다뤘습니다. 평온한 시기였다면 지금까지도 살아 있을 많은 사람이 5·18 당시 저세상으로 갔죠.
자기가 살만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뜬 그들의 존재가 무겁게 다가왔죠. 그들의 혼을 달래는 차원을 넘어 재생하고 싶은 염원을 담아냈지요.”

-긴 세월이 흘렀는데 ‘만인보’를 탈고한 소감은.

“세상에 한 약속은 지켰지만 내 마음속에는 끝나지 않았어요(시인은 23년 전 ‘만인보’ 1권을 낼 때 3000편을 쓰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마지막 원고까지 합쳐 3800여편을 채웠다). 제가 ‘만인보’에서 그려낸 인물들은 이 세상 사람 중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해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세상을 떠다니고 있지요. 이제 겨우 물 위에 찌 하나 띄운 것에 불과하죠.”

그는 우리 민족의 엄연한 구성원인 북한 사람의 이야기를 남북 분단이란 상황에 가로막혀 쓰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선사시대 사람들, 인간 이전의 인간인 호모사피엔스도 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만인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요?

“아니요. 이제 끝났죠. 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다른 작품들을 쓰고 나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만인보’는 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죠. 가장 애착이 가는 시인가요?

“그렇게 말하면 다른 시들이 슬퍼하겠어요. 나는 오랫동안 만인보를 썼지만 중간마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썼어요. 나는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해서는 곧바로 잊어버리곤 해요. 다른 구상이 밀려와 이전 것을 소멸시켜 버린다고 할까요.”

-‘만인보’는 외국에서 더 유명한 것 같은데요?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됐어요. 스웨덴에서는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고등학교 문학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죠. 올해의 책에 선정된 것은 아시아 책으로는 처음입니다. 미국의 유명 잡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는 만인보를 ‘20세기 세계 문학의 최대 기획’이라고 평했지요.”

-마지막 원고를 넘기고 좀 쉬셨나요?

“나는 휴식이 싫어요. 내 휴식은 내가 흙으로 돌아갔을 때 오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휴식은 죄악 같아요. 아직도 쓸 게 많아요. 나에게 압도해 오는 과제(쓸거리)들이 너무 많아요.”

그는 그날도 한 대학출판부에서 출간할 자신의 산문집 교정을 보고 있었다.

-다음 작품은 뭘 준비하고 있나요?

“세계에 처녀를 바치고 그 처녀가 재생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처녀’라고 지었어요. 이 작품에서 시도, 소설도 아닌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구상은 다 됐는데 아직 집필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지치지 않는 왕성한 창작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거죠?

“나는 축제의 운명 속에 있어요. 시를 쓰면 신이 납니다. 춤추고 환희가 엉겨오고,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고, 그런 과정이 즐거워요. 잔치 같아요.”

그는 지금까지 150편 이상의 단행본을 썼다. 시 소설 평론 에세이 등 문학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나요?

“97년인가 히말라야 6500m고지를 준비 없이 오른 적이 있는데, 너무 고생을 해서인지 다녀와서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 거예요. 연재하던 글을 6회까지 쓰고 그만둬야 할 정도였지요. 내 글쓰기에 조종(弔鐘)이 울린 거라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죠. 이듬해 백두산과 금강산, 묘향산 등 북한의 명산들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돌아와서 보니 다시 손이 움직였어요. 히말라야라는 낯선 자연에서 입은 상처가 조국의 산하에서 치유된 거죠.”

다시 만인보로 돌아가 필생의 역작을 끝내는 소감을 물었다. 멈칫하던 그는 “나의 꿈 하나가 끝난 거죠”라고 말하더니 감회 어린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시인은 30년 가까이 꾸어 온 거대한 꿈 하나를 매듭짓고 내면에서 쉼 없이 솟구치는 창작의 열기에 휩싸여 또 다른 꿈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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