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말 몰아친 외환위기의 매서운 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1999년 돛을 올렸던 광주지역의 대표적 봉사단체 ‘100원회’가 만 10주년을 맞았다. 이 단체는 당시 광주광역시의 한 동사무소 동장으로 근무하던 김희만(62)씨가 생활정보지에 낸 한줄 광고가 계기가 돼 출범했다.
김씨는 당시 “홀어머니가 군대 갔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쇠고기를 훔치다가 쇠고랑을 찼다”는 생계형 절도기사를 우연히 신문에서 접했다. 어린 시절 배고픔을 겪었던 김씨는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고 ‘어떻게 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내 주변의 이웃들을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불현듯 책상 서랍 안에서 쓸모없이 뒹굴던 몇 개의 100원짜리 동전들이 생각났다.
“누구에게나 100원짜리 동전 하나는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날마다 꼬박꼬박 100원씩만 모아 기부한다면 끼니걱정을 해야 되는 이웃들에게는 큰 힘이 될 텐데….”
용기를 낸 김씨는 99년 초 생활정보지에 ‘하루 100원으로 불우이웃을 도울 분을 찾는다’는 한줄짜리 광고를 냈다. 그의 진심어린 호소는 입소문이 나면서 ‘매일 100원의 정성’을 약속한 회원들이 6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그해 4월 100원회가 창립모임을 갖는 성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이 단체는 첫 해에만 370만원을 모금하는 ‘100원의 기적’을 낳았고, 2002년부터는 연간 10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이면서 중·고생과 대학생 등에게 장학금까지 지급하게 됐다.
100원회는 올해까지 742명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1억155만원의 장학금을, 불우이웃의 의료비와 생활비 등으로는 1300여만원을 지원했다. 돌볼 가족이 마땅치 않은 노인 585명에게는 영정사진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100원회의 사연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현재는 초등학생부터 85세 할머니까지 전국 각지에서 회원도 650여 명으로 늘어났다.
100원회가 100년 이상 이어지길 소망하는 김씨는 동장을 그만둔 후 폐지나 재활용품의 수집을 통해 기금에 보태면서 묵묵히 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김씨는 “자기 형편도 넉넉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남을 도우려는 회원들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저절로 따뜻해진다”며 “일회성이나 전시성이 아닌, 이런 풀뿌리 기부문화가 우리 모두에게 전파된다면 한 사람이 100원씩만 아껴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광주=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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