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5개월 만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게 된 김양기(59)씨는 30일 광주고법이 무죄를 선고하자 “진실의 승리”라며 가족들과 함께 “만세”를 삼창했다.
“1986년 2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보안대 지하실에서 만신창이가 돼 나온 뒤 강산이 두번도 넘게 변했습니다. 저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또 생겨서는 안됩니다. 간첩 굴레를 벗어 홀가분하지만 우리 수사기관들이 자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맺힌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듯 천장을 한동안 올려다 보던 그는 “가슴이 미어진다”며 잠깐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그동안 전남 여수에서 옷가게로 생계를 꾸리면서 ‘간첩의 아내’로 살 수밖에 없었던 부인 김희유씨(54)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해 억지 자백을 했다고 수백번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며 “지금껏 가시밭길을 함께 해준 아내와 가족들, 정당한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거물급 재일공작지도원의 지시를 받아 국내 정세를 정밀 파악해 북한에 수시로 보고한 간첩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1991년 가석방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김씨는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대 이후 옛 반공법 위반죄로 기소된 사람들 중에 나처럼 ‘조작된 간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거짓 자백을 토대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만큼 국가의 각성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소송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재판을 지켜본 아들 정태씨(29·학원 강사)는 “아버지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무죄 선고되는 날이 반드시 올 줄 알았다”며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아버지를 얼싸안았다. 광주= 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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