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한·인도 간 CEPA 협정은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타결한 기존 자유무역협정(FTA)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합의다. 쟁점이던 자동차 협상에서도 완성차는 관세 인하 계획에서 빠졌다. 그나마 허용된 자동차 부품은 문턱을 낮추는 데 8년이나 걸릴 정도로 옹색하다. 외교통상부도 단기 효과보다 장기 수출잠재시장 확보에 의미를 부여했다.
◇단기적 효과보다 장기적 포석=협정문만 놓고보면 인도의 우세승이다. 인도는 한국산 수입품의 71.7%에 대해 관세장벽을 완전히 없애기로 한 반면 한국은 인도산의 88.6%나 포함시켰다. 철폐기간도 인도에 유리하다. 인도는 3.9%의 품목만 협정 발효 즉시 없애고, 나머지는 발효일로부터 5년이나 8년내 서서히 없앨 방침이다. 반면 한국은 당장 관세를 없애야 할 품목이 60.6%에 달한다. 협상 수석대표인 최경림 FTA 정책국장은 6일 "인도와의 무역협정은 기존 FTA보다 다소 낮고 비대칭적"이라며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강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수치상 유불리를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양국간 '윈·윈' 무역조건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수출주도형 소규모개방경제의 한계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선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로 12억 인구를 보유한 거대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인도시장에서 경합중인 일본과 중국, EU 제품에 비해 경쟁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이미 인도에 진출해 소형차 생산과 수출로 재미를 보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선전을 감안, 완성차 관세 인하도 고집하지 않았다. 다만 자동차 부품과 볼베어링, 디젤엔진 등 주로 중소기업이 만드는 기계제품의 관세 인하는 관철시켰다.
인도 역시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손해보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그동안 태국 등과의 FTA를 체결하기도 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의 첫 무역협정 체결이자 자국의 강점인 서비스 전문직 인력 이동을 이뤄냈다는 성과때문이다. 인도 외교의 목표인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의 궁극적 대상인 한·중·일 가운데 첫단추를 꿰었다는 점도 자축의 대상이다.
◇서비스 개방 등 주요 내용=인도의 경우 한국에 비해 절대적 열위에 있는 무선전화기 산업은 수입관세를 바로 없애는 등 통 큰 모습을 보였지만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 보호가 필요한 산업에선 소극적으로 나왔다. 자국 타타자동차 등이 생산하는 20t 초과 대형화물차에 대해 우리 정부로부터 5년 내 관세 철폐 약속을 얻어낸 인도는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선 아예 관세 인하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은 공산품 수출과 농산물 보호에 주력했다. 공산품에서는 인도로부터 수입하는 품목 중 93%의 관세를 없애거나 줄이기로 약속했다. 반면 농산물의 경우 관세 분류상 1451개 품목 가운데 쌀 보리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고추 마늘 양파 감귤 사과 배 등 650개 품목(44.8%)을 관세 인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최 국장은 "관세 철폐 가속화 및 재검토 제도를 마련해 향후 제3국이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FTA 체결시 추가 협상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말했다.
상품시장에서 소심함을 드러냈던 인도는 서비스시장에선 과감성을 보였다. 통신 회계 건축 부동산 의료 에너지유통 등 사업서비스 분야와 건설 유통(소매 제외) 광고 오락문화 및 운송서비스 등 서비스시장 진입을 허용키로 했다. 정보기술(IT) 전문인력 등에서 비교우위를 감안해 국가간 전문직 인력 진출도 허용했다. 다만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전문인력은 제외했다. 무조건적인 개방으로 인한 후유증을 감안해 대량 유입이나 불법체류 확대시 국가별로 방지책을 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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