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를 만든 이가 이호영(46)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6일 “찌아찌아족 초등학교 4학년 학생 50명이 한글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면서 “내년엔 더 많은 학년에서 한글 교과서로 배우게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외대 전태현 교수(말레이·인도네세아통번역학과)의 소개로 찌아찌아족을 만나게 됐다. 전 교수는 3년 전 국제학술대회차 바우바우시를 방문했다가 한류 덕분에 한국 마니아가 된 현지 시장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고, 작년에 한글 보급 지역을 찾는 훈민정음학회에 바우바우시를 적극 추천했다.
훈민정음학회는 먼저 바우바우시와 MOU를 체결했다. 학회로부터 책임을 맡은 이 교수는 “정부의 견제가 가장 우려됐고 그 다음으로는 해당 민족의 교육열과 한글에 대한 관심이 문제가 됐다”면서 “지방정부와 협력협약(MOU)을 맺고 공식적으로 진행해야만 한글 보급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MOU 안에는 한글로 된 교과서를 만들어 제공하고, 현지 교사들을 한국에 데려와 한국어 연수를 시키는 내용 등이 담겼다. MOU가 체결된 후, 이 교수는 현지 언어를 분석해 문자체계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또 바우바우시 고위 교육관료와 교장, 교사 등을 초청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작년 11월에는 찌아찌아족 교사 2명이 한국으로 연수를 받으러 왔다. 그 중 한 명은 한국의 강추위와 음식, 문화 등에 적응하지 못 하고 한 달 반만에 돌아갔다. 끝까지 남은 한 명이 아비딘 선생이다. 그는 6개월간 남아 한국어를 배우는 한편 이 교수와 함께 교과서를 제작했다. 이 교수는 아비딘씨와 함께 내년 여름까지 찌아찌아어 교과서 2권을 쓸 계획도 가지고 있다.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들에게 한글을 전파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예전에 알타이 프로젝트 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중국 흑룡강 유역의 소수민족인 오로첸족(族)에게 한글을 전파하려 했지만 동북공정 등으로 인한 중국 정부의 곱지 않은 눈길 때문에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또 태국 치앙마이 라오족언어를 조사했던 이 교수의 은사 이현복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도 비공식적으로 한글교육을 했고, 미국 뉴욕주립대 음성과학과 김석연 교수 역시 네팔 오지에 한글 보급 노력을 기울인 바 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이 교수는 “비공식적이거나 개인적으로 가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체계적인 교과서가 없었던 것도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신장된 국력과 한류의 인기 덕분에 한글 보급 사업이 예전보다 쉽게 진행될 수 있었다. 현지에서 한국의 인기와 한글·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의가 의외로 높았으며, 한글을 통해 한국과의 교류가 활성화할 것이란 희망을 찌아찌아족들이 가지고 있어서 초기 접근이 쉬웠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제 행정적 절차가 마련됐으니 그들의 일상생활에 한글이 얼마나 녹아들 수 있을지 관심을 두고 지원해가야 한다”며 “여력이 생기면 다른 민족, 더 나아가 한 나라의 국어를 한글로 채택하는 경우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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