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관 전 석좌교수 “DJ는 전 세계에 아시아 지도자로 각인된 사람”

지명관 전 석좌교수 “DJ는 전 세계에 아시아 지도자로 각인된 사람”

기사승인 2009-08-20 17:14:01

[쿠키 사회] 김대중씨는 1925년생이니까 호적상 나이로는 나와 동갑이다. 그러나 실제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것으로 안다. 1973년 일본에 온 김대중씨를 처음 만났다.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는 농담을 잘하고 화술이 대단했다. 특히 고향의 토속적 사투리를 이용한 우스개소리가 많았다. 시골 사람들하고 허물없이 대화할 줄 알았고, 지적인 사람을 만나면 지적으로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인간적인가 하면 또 정치적으로는 매우 정략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두뇌가 명석했고 사귐의 폭이 넓었고 그러면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주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같은 데 가면 김대중씨가 중심이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은 그 뒤를 따라다녔다. 개인적 리더십, 민주화투사로서의 이력, 국제적 인정 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는 전세계에 아시아의 지도자로 각인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높인 사람이라고 하겠다.

1992년 낙선 후 영국으로 갈 때, 한 여당 인사가 “당신은 유능한데 당신 주위 사람들이 시원찮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술을 못하는 김대중씨가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너희들 일류대 출신들이 나하고 같이 하자고 언제 따라다닌 적이 있느냐?”

실제로 그의 주변 사람들은 좀 작았던 것 같다. ‘약은’ 사람들은 그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난세에 개인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은 출세의 길을 가지 고난 받는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는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겠느냐고 나는 본다.

김대중씨는 집권 후에도 다수당인 야당의 협력을 얻어내지 못해 고생이 많았다. IMF를 극복해내고, 의료보험제도 만들고, IT강국 만드는데 선각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정치풍토만 더 나았다면 그는 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남북문제, 정치문제를 해나가면서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남북문제나 정치문제가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봐야 한다. 김대중씨는 자신을 살해하려고 했던 박정희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래도 경상도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난 김대중씨가 당시의 정치적 풍토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리더였다고 본다.

남북화해는 물론 위대한 공적이다. 양쪽이 서로를 살해하는 불행한 역사는 끝냈으니까. 서로 접촉하고 북을 고립시키지 말고 식량 문제 등을 도와주자는 것에도 찬성한다. 그러나 난 김대중씨의 대북관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본다.

김대중씨는 이상적인 정치이념과 현실적인 정치감각, 두 가지를 다 가진 사람이었다. 정권을 잡기까지는 정치감각이 중요할지 몰라도 정권을 잡고 나서는 정치이념에 충실하기를 나는 바랬다. 세속적인 정치 프로세스에서 탈피해야 하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거기에 너무 의존하지 않았나 싶다. 김대중씨에게는 정치적 리얼리즘이 항상 우선했다.

나는 김대중씨의 말이 정치적 언어인지 마음으로부터의 생각인지 그 구별을 잘 못하겠다. 그는 재임시 박정희씨에 대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퇴직 후에는 이명박씨에 대해 독재자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말들이 정치적 발언인지 진정한 역사해석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납치사건에 대해서도 끝내 얘기를 안 했다. 어쩌면 일생 마음을 터놓고 상의한 사람이 없지 않았나 싶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

어려운 역사를 고려해 볼 때, 이승만 대통령도 위대했고 박정희씨도 그 나름대로 위대했다. 그 다음으로는 김대중씨가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잘못이다. 어느 시대나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게 마련이고, 그걸 넘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역사를 그렇게 봐야 한다.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 정리=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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