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측이 22일 공개한 유품 40여점은 신념에 찬 그의 삶과 소박한 생활 습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DJ는 지난달 1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할 당시 회색 양복에 발목이 헐렁한 양말을 신었다. 비서들은 DJ의 양말 목 부분의 밴드를 항상 빼 발목 관절이 조이지 않도록 했다. 독재정권 시절 당한 고문으로 평생 고관절을 앓아 다리가 자주 부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선물받은 성경, 애용했던 태극문양의 부채, 10년 가까이 사용한 갈색 지팡이 등 DJ의 손때가 묻은 용품들도 공개됐다. 대통령 재직 시절부터 사용해온 만년필, 잠옷과 쿠션, 슬리퍼도 있었다. 최경환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티슈 1장도 둘로 나눠썼다. 어린 시절 하의도에서 고생했던 경험 때문에 물과 전기를 아껴 썼다”고 말했다.
방대한 독서와 성실한 업무 태도를 보여주는 유품도 눈길을 끌었다. 1972년에 발간된 영일사전과 안경, 돋보기.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6월초 시력이 악화되기 전까지는 한국 신문뿐 아니라 돋보기로 사전을 찾아가며 날마다 일본 신문들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고 전했다.
국제학술회의 강연문 등 DJ가 첨삭 표시를 한 연설원고 7점도 공개됐다. 페이지마다 5∼6곳이 친필로 고쳐진 흔적이 있었다. DJ는 원고를 구술한 뒤 초고가 나오면 2∼4차례 수정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벼루와 연적, 먹 등 서예용품과 함께 낙관은 이름이 새겨진 것과 DJ의 평생 신념인 ‘행동하는 양심’, 세계가 한 가족이라는 뜻의 ‘만방일가’, 호인 ‘후광’ 등 4점이었다.
국회 정문 앞 100여m 도로변과 서울광장 주변에는 영결식이 열린 23일까지 DJ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1만5000개가 휘날렸다. 광장과 국회 한켠에 설치된 추모의 벽에는 노란색 메모지와 검은 근조 리본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노란 리본에는 ‘이 나라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라고 적혀 있는 등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그의 영면을 기원했다.
한 메모지에는 “투옥과 고문으로 인해 평생을 고생했던 김 전 대통령이 하늘에서는 더 이상 고통없이 튼튼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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