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1일 자신의 조직을 향해 "권위주의는 버리라"고 질타했다. 지난해 3월 취임 후 서비스기관으로의 탈바꿈을 누차 강조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었다. 금감원과 금융회사를 '갑'과 '을'의 계약관계에 비유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금감원의 위상이 어느 정도길래 이같은 발언이 나오게 된 것일까.
◇"갑·을 대접이면 황송(?)"=이날 금융시장에선 김 원장의 '갑·을 관계' 발언이 단연 화제였다. 김 원장은 금감원 2층 대강당에서 비전선포 1주년 기념사에서 "감독기관과 피감기관(금융회사)의 관계는 힘의 우열에 의한 '갑·을' 관계에서 신사적 수평관계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권을 상대로 탐문해본 결과 현장에서 체감하는 금감원의 고압적 태도는 원장의 발언 수위 이상이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갑·을 대접이라면 황송하다"며 "갑·을이 아니라 갑과 저 끝에 보이지도 않는 순번과의 관계라는 게 문제"라고 어렵사리 입을 뗐다. 제2금융권 관계자도 "금감원 규정에 신고라고 돼 있으면 승인 사항이고, 승인이라면 허가 사항이라는 농담도 있다"며 "현장조사나 통화시 욕설 정도야 이미 익숙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 불만도 비슷했다. 한 관계자는 "증권사는 2∼3년에 한번씩 정기감사를 받는 것 말고도 이슈감사 혹은 수시감사를 1년에 9∼10번 정도 받으니 결국 일년 내내 감사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러니 불편한 내색을 드러냈다간 후환이 두려워 아무소리 못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한 임원은 "금감원에는 여전히 '괘씸죄' 처분이 암묵적으로 존재한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누가 변화에 호응하며 거들고 나서겠나"고 반문했다.
◇딜로이트 설문조사, 절반 이상 "고압적 느꼈다"=김 원장의 입에서 이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금감원이 딜로이트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 때문이다. 딜로이트는 최근 두달여간 금융회사 임원 40여명과 상장기업, 금융회사 종사자 590여명을 대상으로 '금감원에 대한 외부인식 조사'를 실시해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59%가 경험을 통해 고압적(26%)이라고 느꼈거나 고압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33%)고 했다.
당국의 고압적인 태도를 경험했다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자료 요청과정에서의 금감원 직원 태도를 꼬집었다. 전화 통화상의 고압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다수였다.
이에 대해 금감원측은 "금융위기 상황에서 다급하고, 촉박하게 자료를 요청해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며 "조사를 벌일 경우는 조사내용과 범위를 밝히지 않도록 돼 있어 목적을 밝히지 않고 자료를 요청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피감회사인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기관 간에도 이러한 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초 금감원과 비상금융합동상황실 설치를 조율했던 금융위원회는 내부 검토보고서를 통해 "금감원 반발 등을 감안해 외환유동성 관련 자료부터 확보하고 순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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