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세계는 한국축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7위와 월드컵 4강 진출 등 그동안의 기록들이 한국축구의 현 위치를 말해주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세계인이 직접 말해주는 견해일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점에서 2010년 남아공월드컵 취재는 저의 오랜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남아공 땅을 처음 밟았던 10일(이하 현지시간)부터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28일까지 3주 간 경기장과 미디어센터에서 수없이 많은 언론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대표팀과 격돌했던 그리스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우루과이는 물론, 개최국 남아공과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미국, 일본 등 국적도 다양했죠. 때로는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상대와 손짓 발짓을 총동원할 때도 있었는데 그래도 한국축구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을 빼놓지 않고 던졌습니다.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이 열렸던 12일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에서 기자석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남아공 출신 반 윅 그래드윈 기자는 한국축구를 꽤 오래 전부터 관찰해온 것 같았습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뒤덮었던 붉은 물결과 대표팀의 4강 진출을 인상 깊게 봤다던 그는 “이제 붉은색을 보면 ‘레드엔츠’와 한국이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뒤늦게 찾아보니 레드엔츠는 현지에서 가장 악명 높은 철거용역업체이기는 했습니다만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붉은색이라는 상징으로 한국을 떠올린다는 점이 한국축구의 높아진 입지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외신기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나라가 어디인가’를 되묻지 않았습니다. 1954 스위스월드컵을 시작으로 반세기를 넘간 한국의 월드컵 도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을 지울 수 없더군요. 대부분의 외신기자들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AS모나코), 이청용(볼튼 원더러스) 등 유럽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으며 대표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릴 정도로 주목 했습니다.
브라질과 코트디부아르의 조별리그 G조 2차전을 하루 앞둔 18일 요하네스버그 상업지역 샌드턴의 월드컵 티켓센터에서 만난 브라질 라디오 ‘문디FM(99.3MHz)’의 원로 언론인 오리시스 바티스타 나달씨도 이미 한국축구를 알고 있었다는 듯 “21세기 들어 더 빠르고 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면 더 노력해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펠레(70)가 브라질에서 한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직접 들은 적은 없다”면서도 “펠레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알지 않는가. 세계 최고의 선수였지만 말을 아껴야한다”고 재치 있게 답하더군요.
냉정한 현실을 깨닫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죠, 17일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 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유명 방송국의 한 PD는 “우리 국민들이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일부 편파판정과 일방적 응원 속에 조국의 우승을 일궈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도 2002년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개최국으로서 한 차례 달성했던 성과를 잊지 못한 채 점진적 발전을 꾀하지 않는다면 세계 수준에 오를 수 없다는 애정 어린 충고였죠. 한국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하며 한 단계 성장을 증명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4강을 넘어 우승국에 이름을 올릴 날이 오겠지만 우선은 한 계단씩 올라가야합니다. 4년 뒤 또 한 번의 성장을 기대합니다. 포트엘리자베스(남아공)=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자쿠미(Zakumi)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공식 마스코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