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어? 이청용이다!”
지난 28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4시55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사우스아프리카항공 SA286편 비행기가 이륙을 앞두고 들썩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취재진과 응원단이 탑승한 이 비행기에 축구대표팀이 올라탔기 때문이었죠.
코칭스태프와 베테랑 선수들은 대부분 비즈니스석으로 직행했으나 박주영(AS모나코)과 이청용(볼튼), 기성용(셀틱), 정성룡(성남) 등 상대적으로 어린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으로 들어와 취재진과 응원단 사이에 앉았습니다. 응원단의 입장에서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순간이었죠.
이역만리 타지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고도 관중석 담장 너머로만 봐야했던 선수들이 바로 앞에 나타났으니 반갑지 않을 리 없었을 겁니다. 선수들의 좌석 주변은 사진촬영과 싸인 요구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외국인 승객과 승무원까지 동참하며 이륙 직전 비행기 안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동안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선수들과 공식적으로만 대면했던 기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만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카메라를 꺼낸 한 방송사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더 이상 취재경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자들도 선수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죠.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선수들과 줄다리기했던 믹스트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까지 감돌더군요.
저도 바로 앞좌석에 앉았던 이청용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샴푸는 아직 남았나요?(이청용은 그동안 ‘가져온 샴푸를 다 쓰고 싶다’는 말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라는 등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색함을 없앤 뒤 또 다시 종이를 들고 몰려든 팬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예정에 없었던 대표팀 팬 사인회는 30여분 간 진행됐고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끝났습니다. 이청용은 항공사가 제공하는 영화 대신 개인 컴퓨터로 국내영화 ‘육혈포강도단’을 감상했고 기성용은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 쓴 채 새우잠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비행기는 남아공을 떠나 12시간 동안 평화롭게 날아왔습니다.
남아공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최단거리 항공편인 홍콩행 비행기가 자주 없어 발생한 해프닝이었습니다. 이코노미석이라도 탑승해야했던 탓에 일부 어린 선수들이 귀국 직전까지 팬 서비스를 했던 것이죠.
대한축구협회는 당초 8강 진출 시 전용기를 띄울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로 만족하면서 전용기를 4년 뒤로 기약했습니다.
대표팀은 귀국 항공편의 중간 기착지인 홍콩부터 비행기를 제공한 한 국내 항공사의 배려로 3시간여 동안 편안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4년 뒤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전용기에서 더 안락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