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2’에서 환풍기 설치공이었던 가난한 청년 허각(26)이 노래 하나만으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허각의 성공 스토리가 공정사회를 꿈꾸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평했다.
허각은 학벌, 집안 배경 등 소위 말하는 ‘스펙’이 없었다. 편부 가정에, 학력은 중졸이었다. 외모도 평범했다. 163㎝의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이었다. 그는 낮에는 환풍기를 고치고, 밤에는 행사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가 물리친 존박은 잘생긴 외모에 미국 명문대 출신으로 화려한 ‘스펙’을 자랑했다.
하지만 허각은 노래에서만은 최고였다. 22일 ‘슈퍼스타K2’ 최종 결승전에서 ‘언제나’를 열창한 허각에게 까다롭기로 소문난 심사위원 이승철은 “노래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며 역대 최고 점수인 99점을 안겼다. 심사위원 평가 외에도 모바일·인터넷 투표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허각은 988점으로 596점을 받은 존박을 압도적인 차이로 제쳤다.
회사원 김혜민(27·여)씨는 “실력으로만 승부해 우승을 거머쥔 허씨의 모습을 보며 크게 감동 받았다”며 “고위 공무원 자녀의 특채 사건 등을 보며 느낀 불공정 사회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시청자가 오직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허씨의 우승을 바라게 된 것”이라며 “성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 허씨의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감동했다”고 분석했다.
허각의 우승은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기 힘든 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답답함을 해소시켰다는 시각도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구 같은 허각은 고된 합숙생활에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여자친구랑 먹던 치킨버거”이고, 우승 후 하고 싶은 일은 “아버지와 함께 라면을 끓여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건이 완벽한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판타지를 허씨가 충족시켰다”고 설명했다.
눈물겨운 가족애도 가족을 중시 여기는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했다. 세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허각은 2004년 5월 쌍둥이 형과 한 방송에 출연하면서 어머니를 찾게 된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새 가정을 꾸린 상태. 전화했을 때 어머니가 ‘통화할 수 없다’는 암호를 보내면, 전화를 끊어야 했던 허각의 사연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힘든 미션 합숙기간 동안 “날 지탱해준 것은 아버지, 형, 여자친구였다”는 그의 고백에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부모를 원망하기보다는 “이렇게 좋은 목소리를 주셔서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하는 허각의 따뜻한 심성은 시청자에게 뭉클한 감동을 줬다.
“우승 상금 2억원으로 아버지, 형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허각. 23일 새벽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그가 밝힌 우승소감은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참가했는데 이제는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을 텐데, 이번에 지적 받은 점을 고쳐 더 가슴 안으로 다가갈 수 있는 노래를 하겠습니다.”
이선희 임세정 기자,사진=홍해인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