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사라진 한국유학생,日경찰은 수사조차 안해…속이 다 타버린 父情

2년전 사라진 한국유학생,日경찰은 수사조차 안해…속이 다 타버린 父情

기사승인 2010-12-30 13:17:00


[쿠키 사회] “어제였나요, 50대 조선족 여성이 12일째 연락이 끊겨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기사를 봤어요. 우리 애는 2년이 넘었는데….”

아버지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간 지 오래됐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둘째아들이 사라진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우수한 성적으로 문부성 장학금까지 받아가며 모범적인 유학생활을 하던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연락 한번 오지 않고 있는데도 일본 경찰은 '단순가출'이라며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김상대(58)씨는 아들을 찾기 위해 수차례 조사를 요청하고 진정서까지 냈지만, 일본 경찰은 아직까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둘째아들 영돈(29)씨가 연락이 끊긴 것은 지난 2008년 10월 30일. 일본 센다이 소재 동북전자전문학교 게임엔지니어과로 유학을 떠난지 약 1년 6개월만이다. 사람까지 써가며 센다이 지역 전체 주택가에 전단지를 붙이는 등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여 온 김씨는 최근 회사를 관뒀다. 오로지 아들을 찾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29일 서울 반포 소재 자택 아파트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씨의 첫마디는 "일본 경찰은 '가출인데 무슨 수사냐'며 아예 사건에 손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관할인 센다이키타 경찰서는 일부 정황만으로 단순가출이라고 결론짓고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연락이 끊기기 2주전 영돈이가 통장 잔액을 전부 인출하는 등 정황상 단순가출이라며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서 "그러면서 신원미상의 변사체 사진을 영돈이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혹시 이 변사체가 김영돈씨 아니냐’라고 하는 등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CCTV를 통해 영돈씨가 직접 돈을 인출하는 것은 확인됐다.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는듯한 눈치도 아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에 태연한 모습이었다. 영돈씨는 2008년 10월 16일 총 75만9000엔, 20일 5000엔, 24일 3000엔을 인출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절친하게 지냈던 이모씨로부터 “방 월세도 내야하고 동경에 갈 일이 있다”며 12만엔을 빌렸다.

단순가출이라는 일본경찰의 판단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훑어보면 많은 의문점이 생긴다.

일단 김씨는 영돈씨가 그 많은 돈을 한 번에 인출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평소에 돈을 엄청 아껴써요. 1만원짜리 한장도 벌벌 떨면서 쓰는 애에요. 그런 애가 70만엔(한화 약 700만원)이 넘는 돈을 한 번에 뽑다니요. 그리고 전 영돈이 통장에 그렇게 돈이 많은지도 몰랐어요. 자기 힘으로 유학생활 해 나가겠다는 결심이 워낙 강했어요. 우리가 돈을 보내준 건 두 번인가 밖에 안 되요. 방 월세는 4만엔 정도였고요”라고 설명했다.


또 김씨는 “계획된 가출이라면 다른 건 다 놓고 돈만 가져갔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연락이 끊긴지 며칠이 지나 어머니가 영돈씨 자취방을 찾았을 때 여권, 휴대전화 충전기, 면도기, 좋아하던 선글라스, 옷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또 벌어졌다. 이후 다시 찾았을 때 방에 있던 TV와 가족들과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 등 몇몇 물품이 없어진 것이다. 2008년 12월에서 2009년 1월쯤으로 예상될 뿐이다. 주변에 CCTV도 없어 정말로 가출한 영돈씨가 와서 가져간 것인지, 아님 범죄가 개입돼 있다면 단순가출로 포장하기 위해 다른 이가 가져간 것인지 알길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10월 30일 이후 전화를 걸면 자동녹음 안내음성이 나왔지만, 11월 15일부터 20일까지는 ‘고찌라와 소프트방크데스(여기는 소프트뱅크입니다)…’라는 다른 안내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25일 오후 5시 10분~20분 사이에 전화를 거니 이번엔 신호가 갔고, 잠시 뒤 다시 전화를 거니 다시 그 안내음성이 나왔다. 또 12월 13일 새벽 4시쯤 전화를 걸었을땐 통화중 신호음이 들렸고, 2009년 1월 31일 새벽에 걸었을때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고 안내음성이 나왔다. 그런데 휴대전화 요금은 2009년 7월달까지 인출됐다. 영돈씨의 빈 통장에는 김씨가 월세 등의 이유로 달달이 돈을 입금해놨다.

이 모든 애매한 정황의 수수께끼는 경찰의 조사를 통해 풀릴 수 있지만 김씨는 일본경찰은 단순가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단순가출이라도 2년이나 흘렀다면 조사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자 김씨는 “하는 말이 그런 애들은 너무 많답니다. 그래서 영돈이만 특별히 해 줄수는 없다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현지 한국영사관측에서 도움을 주고는 있지만 일본경찰을 움직이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경찰청 외사과에서도 조사 중이지만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니 한계가 있다.

김씨는 “한 번은 현지에서 알게 된 친구가 영돈이로부터 공중전화로 전화가 왔었다고 하길래 그 내역이 나온 휴대전화 화면을 제가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경찰에 보여주면서 위치를 확인해달라고 하니 그건 개인정보 침해니 어쩌니 하면서 귀찮다는 듯한 태도로 안 해주더라고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이메일 수색, 휴대전화 통신 내역 조회, 위치 추적 등 기본적인 조사만 해도 어느정도 파악은 가능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애들은 기다리면 자기 발로 돌아온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에요. 우리 가족은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입니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김씨는 28일 권철현 주일본대사 앞으로 영돈씨가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아니면 최소한 생사확인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일본경찰에게 조사를 요구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얘가 무슨 이유땜에 한 번에 돈을 많이 쓰게 된거에요. 그래서 월세 낼 돈도 없어지고 부모에게 손 벌리긴 미안하고. 그러니까 연락도 못 하고 어디선가 그 돈 벌기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겠죠? 영돈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애에요.”

단순가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기본적인 조사도 안 해주는 경찰이 원망스럽지만, 단순가출이라는 그들의 판단이 맞기만을 바랄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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