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밥 좀…” 女시나리오작가 죽음,왜 친지 도움 없었나

“남는 밥 좀…” 女시나리오작가 죽음,왜 친지 도움 없었나

기사승인 2011-02-08 15:59:01
[쿠키 사회] 한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가슴아픈 죽음에 네티즌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약자는 늘 갈취당할 수 밖에 없는 업계의 수익배분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8일 경기도 안양시 만안경찰서에 따르면 영화 시나리오 작가 A(32)씨가 안양시 석수동 월셋집에서 지난달 29일 죽은 채 발견됐다. 최씨를 처음 발견한 이는 같은 다가구주택에 살던 또다른 세입자 B(50)씨였다.

경찰 및 이웃들에 따르면 A씨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월세도 몇 달째 밀린 상태였고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였다. 인근 상점 주인들이 외상을 주기도 하는 등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안 이웃들이 간간히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A씨의 사정을 나아지지 않았다.

A씨는 죽기 전 B씨의 집 문에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붙여놓았다. B씨가 이를 보고 음식을 챙겨왔을 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 있었다.

경찰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최씨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영화계에서는 영화인들을 생활고로 내 모는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화계에 따르면 신인 작가들은 계약금의 극히 일부만 받고 시나리오를 일단 제작사에 넘겨야 하고, 영화 제작이 들어가야만 잔금을 받을 수 있다. 영화 제작 일정이 확실히 잡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좋은 시나리오를 묶어두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신인작가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지난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화과(시나리오 전공)를 졸업한 A씨는 제작사와 일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영화 제작까지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사연에 네티즌들도 탄식하고 있다. 트위터의 리트윗(Retweet) 횟수 순위를 보여주는 사이트(followkr.com)에서는 A씨 관련 글이 상위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아이디 @leslethe는 “한예종 출신의 유망했던 시나리오 작가가 이렇게 세상을 뜨다니, 2011년 대한민국 문화산업의 현실이란 말인가” 라고,
@eyedaho2010는 “영화판 구조적 폭력 때문에 돈이 없어 병을 치료받지도, 끼니를 보장받지도 못해 죽은 작가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대학에 입학한 후 가족과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친한 친구도 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진 않은 것 같다. 지병이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못하거나 할 정도도 아니었다”며 “본인이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서 거의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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