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배우 고 장자연이 생전 술 접대와 성 상납을 해 고통스럽다는 내용이 담긴 친필 편지가 대량 발견돼 연예계가 술렁거렸다. 장자연이 사망한지 2년 만에 다시 일어난 일이다. 친필 추정 편지의 존재를 두고 여러 세력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거칠게 타들어갔던 ‘정의의 불’은 여러 번 실랑이 끝에 ‘위작’임이 밝혀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10일 만에 식어버렸다. 찻잔 속 태풍이 돼 또 다시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고 장자연 사태’. 그 과정을 짚어봤다.
장자연이 죽음을 택한 지 2주년이 되기 하루 전인 지난 6일. SBS ‘8시 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세상 빛을 본 ‘장자연 사태’. SBS는 고인이 생전에 알고 지낸 전 씨와 50통 23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연예계 및 고위 종사가 관계자 31명에게 술 접대와 성 상납을 100여 차례했다고 집중 보도했다. 이 내용이 전파를 타자마자 연예계는 또 다시 2년 전 분위기처럼 충격의 도가니에 빠진 듯 심하게 요동쳤다. 각 언론사는 다시 고개든 장자연 사태를 일면으로 속보로 보도하며 재수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재수사하라”는 여론이 거세게 형성되자 경찰이 사건의 진위여부를 가리겠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고인과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주장하는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 씨의 감방을 압수수색해 고인의 친필 문건으로 추정되는 원본 24장을 확보했고, 곧바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필적 감정에 들어갔다.
‘국과수’의 감정이 진행되는 사이 경찰은 친필 추정 편지봉투에서 “조작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경찰의 보도 이후 “편지가 가짜다”는 쪽으로 호도되자 SBS는 곧바로 “방대한 분량을 위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찰의 수사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경찰과 SBS의 실랑이가 계속되면서 분위기는 “경찰이 가짜라는 말을 흘리고 있는데 편지가 위작이라는 결론이 나겠냐”며 ‘위조 편지’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역시나 지난 16일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도 “맞춤법 표기, 글자 모양, 필순이 다르다”고 밝히며 “필체가 고인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전 씨의 자작극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전 씨에 대해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다. 망상장애가 있는 비정상적 상태”라고 설명했다. 편지가 위작임이 밝혀짐에 따라 재수사도 결국 백지화됐다. 10일 동안 시끄러웠던 ‘장자연 사태’는 그렇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중은 정확한 ‘국과수’의 결과도 경찰의 발표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아무리 정신장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230쪽에 달하는 분량을 혼자 쓰는 건 어렵다” “고인과 연관이 있었던 성 상납 강요자가 고위층과 관련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며 “무언가 진실을 가리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론은 왜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는 걸까. 바로 경찰의 부실수사가 근본적 원인이다. 곪아버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 법. 2년 전 고인은 친필로 판명 났던 문건을 통해 생전에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받았고, 이로 인해 씻지 못할 수치심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소속사 전 매니저 김 씨의 명령 아래 유명 일간지 사장, 방송사 PD, 고위층 관계자 등이었다. 고 장자연은 문건에 주민번호와 지장까지 찍었다. 명백한 사실인데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고백이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가해자는 없었다. 혐의자로 지목됐던 사람들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심지어 주요 관련 인사들은 강도 높은 수사를 받지도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홍콩 동방일보의 지난 17일자 보도가 눈길을 끈다. 대만 연예인 린웨이링이 고 장자연 사태에 대해 “실체는 절대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 그는 동방일보를 통해 “고인이 이승을 떠날 때 한국에 있었는데 당시 한국매체 어느 사장이 이 일은 폭로될 리 없다고 말했다”며 “진실이 억눌려지는 이유는 무언가 진실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보도는 한 여배우의 지극히 주관적 견해일 수 있다. 어디에도 장자연 사태가 절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객관적 근거나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 타지에서도 고 장자연 사태가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도 설득하지 못하는 국내 경찰의 부실한 수사를 우회적으로 질타하는 건 아닐까. 2년 전 나약한 신인배우의 절규에 감춰진 진실은 그렇게 주어진 10일 간의 유효기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묻혀버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