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고라엔 15일 ‘여성가족부의 어이없는 행패를 고발한합니’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자신을 인디밴드 ‘여우비’의 리더라고 밝힌 뒤 “제 노래가 19금, 청소년 유해매체에 걸렸다”고 밝혔다.
문제의 노래는 ‘여자와 남자가 이별한 뒤에’라는 제목의 발라드 곡이다. 노래 중 ‘추억은 가슴에 묻고서 가끔 술 한잔에 그대 모습 비춰 볼게요’라는 가사에서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심의 기준이 뭐냐=현재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은 여성부에서 관할하고 있다. 대중가요를 비롯한 모든 음악이 제재대상이며 폭력성, 비속어, 선정성, 유해약물 등이 나오면 제재를 받게 된다. 여성부에 따르면 술과 담배는 청소년 유해 약물로 분류돼 있다.
밴드 리더는 “노래 제목 옆에 19금 마크가 생기면 청소년들은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없게 된다. 성인 인증을 해야 가능하다”면서 “인터넷 음원 다운로드 주류가 청소년이란 점에서 노래 제목에 19금 마크가 생기게 되면 경제적인 손실이 클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 리더는 여성부 관계자와의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는 “‘음원차트 상위권에 있었던 음악 중에도 술을 마시거나 술에 관련된 노래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항의했더니 다른 노래는 안 걸렸는데 자기 노래만 걸려서 물어보는 거냐고 하더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 리더는 “자신은 그런 열등의식이나 질투 따위는 없다”면서 “단지 인지도도 없고 한반도 소개된 적 없는 (자기) 음악이 심의에 걸렸다는데 말이 안 된다고 물었을 뿐”이라며 “도대체 무슨 기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와 함께 술, 담배 관련 단어가 있거나 술 마시는 행위를 묘사한 노래 중 제재를 받지 않은 곡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올렸다. 그가 올린 노래들은 현재 노래방에 수록돼 있고 컬러링 벨소리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리더는 “지금 여성가족부에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기준도 없는 잣대로 모든 음악을 규제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많은 뮤지션들의 음악이 규제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티즌들도 여성부를 질책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아이디 pam_c****인 네티즌은 “나도 여자지만 여성부 진짜 쓸데없는 짓 많이 한다”면서 “이런 거 하지 말고 제대로 일 좀 하자. 여성부가 이러니까 괜한 여자들까지 욕먹고”라고 토로했다.
◇단어 보다는 전체 맥락=여성부는 이 같은 반응에 즉각 해명했다.
여성부 관계자는 “심의 기준상 클럽 등 유해업소의 출입, 술·담배 등 유해약물의 효능 및 제조방법을 알려주거나 매개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유해매체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술, 클럽 등의 단어만 들어갔다고 모두 유해매체로 판정하지 않는다. ‘여우비’ 밴드의 노래도 남녀가 헤어지면 술을 마신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전체 맥락에 따라 유해매체로 선정했다.
이러다 보니 심의위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은 청소년 보호법 제7조 심의기준에 따라 2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음반의 경우 9명으로 구성된 음반심의위원이 1차 검토를 한 뒤 청소년 보호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청소년 보호 위원은 교수, 미디어 전문가, 언론인, 방송인, 법조인 등 10여명으로 구성됐다. 유해매체 로 판정되려면 출석 위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된다.
이 관계자는 “신인 가수들은 심의 기준을 잘 모른 채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청소년 공익에 저해되는 것을 막을 수 밖에 없다”면서 “청소년에게만 판매, 유통을 막는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최근 유통사나 제작사들도 심의규정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심의의 애로사항도 호소했다. 일부 술 등의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제재없이 유통되고 있다는 밴드 리더의 주장에 대한 해명이었다.
이 관계자는 “음반 시장의 규모를 놓고 보자면 전곡을 모두 모니터링할 수는 없다”면서 “예산이 지원돼 모니터링 센터를 두고 광범위하게 심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재 인력에 한계가 있어 놓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신 학부모나 교육단체의 신고나 항의로 심의를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여우비’ 밴드의 리더가 지적한 곡들 중엔 실제 심의의 허점 때문에 모니터링되지 않은 곡도 있었다.
이현·창민의 듀엣곡 ‘밥만 잘 먹더라’에선 ‘친구들과 술 한 잔 정신없이 취하련다 다 잊게’라는 가사가 있다. 여성부 관계자도 “우리가 놓친 것 같다”고 인정했다.
여성부 관계자는 “우리는 유해한 가사들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나이를 제한할 뿐”이라며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판매량과 판매수익인데 매출만 생각해 청소년 보호는 뒷전에 두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