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된 여러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벌였지만 ‘팩트’는 없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우병우 수사기획관이 21일 부산저축은행그룹 부당인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한 말이다. 정·관계 유력 인사의 예금 특혜인출이나 금융감독 당국의 영업정지 비밀 유출 등 핵심 의혹에 대해 ‘실체 없음’이란 결론을 낸 데 대한 설명이다.
검찰이 검사 2명과 수사관 23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려 60일간 수사했지만 수사 대상과 범위를 소극적으로 설정,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지난 4월 21일 예금 부당인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5일 뒤 공식 자료를 내고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날 국무회의에서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이런 비리(특혜인출)로 국민들의 불만이 많아진다”며 엄중 조사를 요구했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직원 133명과 영업정지 전날인 2월 16일 업무시간 마감 후 인출한 978명, 금융 당국의 영업정지 방침이 정해진 1월 25일부터 영업정지 직전까지 5000만원 이상 정기 예·적금 중도해약자 579명을 차례로 조사했다. 통화내역 분석만 20여만건에 달했다. 그 결과 영업정지 전날 부산·대전저축은행에서 VIP 36명에게 85억여원이 부당 인출된 사실도 찾아냈다.
그러나 검찰은 1월 25일∼2월 16일 업무시간에 5000만원 미만을 인출한 사람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5000만원 미만은 예금자 보호를 받기 때문에 부당인출 가능성이 적고 이 경우까지 모두 수사할 경우 대상이 4만5000여명에 달해 수사 여건 상 무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소액 인출자 중에도 영업정지 정보를 미리 입수한 정·관계 고위층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검찰은 또 금융 당국이 2월 15일 부산저축은행 대주주에게 영업정지를 신청하라고 요청한 것이 부당인출의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이를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행정절차 이행 과정의 반사적 효과일 뿐 고의성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못 밝혀낸 게 아니라 ‘없다’고 밝혀낸 것”이라며 “없는 사실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부당인출 수사는 착수 당시부터 관련자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마땅찮아 형사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검찰이 비등한 여론과 정치권 압박 등에 밀려 수사에 뛰어든 측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결국 피해자들에 대한 민사상 구제책을 강구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부당인출된 예금 85억여원을 통합도산법상의 ‘부인권(否認權)’ 행사를 통해 환수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인출자들이 다른 예금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