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장애에도 지방서 올라온 ‘고대 의대생 출교 1인 시위’ 20번째 주인공
[쿠키 사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러 왔습니다.”
8일 아침 등교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눈길이 유독 쏠리는 곳이 있었다. 이 학교 의대생 3명의 성추행 사건 이후 ‘출교 요구 1인 시위’ 모습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날은 휠체어에 의지한 장애인이 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한 트위터리언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시위의 20번째 주인공인 오재헌(51)씨.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는 하반신 장애인이다. 그는 이날 출교 요구 1인 시위를 위해 시각장애인 강모(19.여)씨와 함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라도 광주에서 올라왔다.
오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장애인이라 매일 병원에 다니는데 그 사건이 이후 이틀간 젊은 의사들 얼굴을 못 봤다”며 “특히 여성 장애인들 생각이 많이 났다. 병원에 자주 가야 하는 장애인들, 특히 여성 장애인들은 성추행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부도덕한 의사들이 계속 양산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장애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시위 참여 이유를 밝혔다.
오씨와 강씨는 이날 광주에서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해 서울 용산역에 8시 13분에 도착했다. 용산역과 고려대역은 지하철 시간으로 2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그들은 9시 15분에야 고대 정문 앞에 도착했다.
오씨는 “한 트위터리언(@polarb911)이 도움을 자청해 아침부터 용산역에 나와주셨다”며 “그 분 도움 아니었다면 그 시간에도 도착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한 번 타는 것도 일”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아침 등교하던 한 여학생은 1인 시위 중인 오씨와 눈이 마주치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입모양으로만 ‘수고하세요’라고 격려를 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오씨는 “그 순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많은 학생들이 이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여러 사회적 이슈가 연이어 발생하며 이 사건이 자연스럽게 잊혀져가는 흐름을 아쉬워했다. 오씨는 “이 사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고대측은 여전히 자체조사를 진행 중이다. 고대측에 따르면 현재 양성평등센터에서 사건을 자체 조사 중이며, 내부 규정에 따라 양성평등센터는 조사 개시일로부터 60일 안에 조사를 끝내야 한다. 따라서 이번달 안으로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
오씨는 “이 사건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며 “당사자가 용서하지 않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직 학생인데...’ ‘한순간의 실수인데...’라며 용서를 유도하는 분위기가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