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당시 담당 형사 “세상 모든 단어로도 표현이 안 돼”

‘도가니’ 당시 담당 형사 “세상 모든 단어로도 표현이 안 돼”

기사승인 2011-10-05 17:13:00


[쿠키 사회]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형사의 심경이 담긴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형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장애인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조사 당시 피해 아이들을 대할 때의 기억을 차분히 풀어냈다.

광주 남부경찰서 형사과 과학수사팀 김광진 형사는 4일 밤 자신의 트위터에서 “나는 도가니 담당형사였다”며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내 기억 속에 서서히 사라져 갔던 그 애들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 사건을 같이 수사했던 선배 형사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고 밝혔다.

김 형사는 “6년전 광주 인화학교에 다니던 여학생들에게 피해내용을 확인하면서 세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며 “경찰관으로 재직하면서 여러가지 사건을 접해봤지만 그 사건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피해 학생과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아 수화통역사를 통해 피해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에 서로의 의사전달이 어려운 점은 있었다”며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에서는 그들이 당한 고통이 텔레파시처럼 전달돼 내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고 당시의 착잡한 심정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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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사는 사건 담당 형사로서 유지해야 하는 차분함과 냉철함,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충격 사이에서 당황했던 자신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범죄로 인해 느끼는 고통은 장애우나 정상인들 모두 같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장애인들이 우리보다 몇천배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니 피해학생들을 조사하면서 손이 떨려와 조사를 받을 수 없었으나 담당형사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들키지 않으려 애쓰다보니 조사과정이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 같다”며 “하지만 그 애들에겐 생각만 해도 죽을 것처럼 힘들텐데, 정상인도 그런 피해를 당하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법인데, 하물며 아픔을 감내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일그러지고 처절한 그들의 수화에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경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에 대해 경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도가니’에서 등장하는 ‘장 형사(엄효섭 분)’는 무진 장애학교측과 노골적인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사건을 외면한다. 영화 후반부 피해자측의 시위 현장에 경찰의 물대포 진압 장면이 등장한다. 또 장 형사가 시위 중인 청각장애인들을 향해 “해산하라”고 외치다 돌아서서 그들을 폄하하듯 “아 XX, 말해도 못 듣지”라고 중얼거리는 모습도 나온다.

김 형사는 “영화에서 교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담당형사가 성폭력 신고를 받고도 수사하지 않고, 법원 앞 시위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면서 물대포를 쏘는 등 과도한 공권력을 묘사하거나 피해 학생이 열차사고로 사망하는 등 사실과 다른 영화장면을 보면서 당시 사건담당 형사로서 안타까움은 있었다”며 “하지만 영화를 통해 모든 국민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을 다시 한번 자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들의 인권이 재조명되고 미비한 관련법들이 개정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길 간절히 바랄 따름”이라고 촉구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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