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학교 암매장’ 폭로 김영일씨 “아이 시신을 택시 불러다 옮겨”

‘인화학교 암매장’ 폭로 김영일씨 “아이 시신을 택시 불러다 옮겨”

기사승인 2011-10-28 11:16:00

[쿠키 사회] 무덤덤한 수화(手話)는 한마디도 없었다. 대답을 할 때마다 ‘내 말을 믿어달라’고 애원하듯 온 몸을 써가며 격렬하게 수화를 했다. 한숨을 푹푹 쉬고 우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영화 ‘도가니’의 실제 모델인 광주 인화학교의 전(前) 교사 김영일(71)씨는 지난 17일 광주시청 앞에서 열린 ‘우석법인 해체와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1960년대에 인화학교가 굶기고 때려 숨진 학생 2명을 암매장했다. 당시 내가 땅을 팠다”고 폭로해 현장에 있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성폭력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람들을 다시 한 번 ‘공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26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1964년 10월쯤이었다. 교감(이 교감은 영화 도가니 속 교장·행정실장 형제의 삼촌)이 부른다고 해 가보니 남자 아이가 죽은 채 가마니에 싸여져 있었고 교직원 두 명도 와 있었다. 장소는 보모방이었다. 많이 놀랐고 무서웠지만 교감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교감은 마치 조직폭력배같았고 정말 무서웠다. 모든 교사들이 교감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리고 6개월 뒤 여자 아이가 죽었고 그때도 암매장을 했다.”

-사람들이 자는 틈을 타 밤에 시신을 옮긴 건가. 어떻게 옮겼나.

“아니다. 오후 3~4시쯤으로 기억한다. 이미 다른 학생들은 보지 못하도록 다 내보낸 상태였다. 아이 시신을 가마니에 싼 후 택시를 불러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2km 정도 떨어진 무등산의 암매장 장소로 갔다.”

-택시기사는 사람 시신인지 몰랐나.

“왜 몰랐겠나. 너무 놀라운 상황에 좀 멍해진 것 같더라. 얼떨결에 운전을 한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 택시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후 경찰에 바로 고발을 했더라면 교감이 처벌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그 택시기사가 교감과 원래 알던 사이 아니었나.

“그건 아니다.”

-언제 처음으로 문제 제기를 했나.

“이후 3년 정도 지났을 때다. 밥을 먹는데 김치에서 벌레가 나왔다. 학생들이 기겁을 하고 화를 내면서 밥그릇을 뒤엎는 등의 행동을 했다. 교감이 학생들을 다 불러놓고 줄을 세우더니 마구 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 저녁에 교감에게 가서 식사와 구타 문제에 대해 따졌다. 그러니까 나를 마구 때리더라. 그 순간 고여 있던 모든 억울함이 솟구쳐 올랐다. 일주일 정도 지나 몇몇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를 주동한 학생들은 퇴학당했고 나도 괴로워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2년간 싸웠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경찰이 학교를 압수수색을 하려 한 단계까지 간 적이 있었지만 흐지부지됐다.”

-싸우는 과정에서 본인에 대한 협박 등은 없었나.

“무등산으로 끌려간 적이 있다. 교감하고 모르는 사람 2명이 있었다. 친인척 관계가 아닐까하고 추측할 뿐이다. 맞아가며 넘고 넘어 2~3시간은 간 것 같다. 아무래도 깊은 산 속으로 끌고 가 죽여서 묻으려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었다. 천신만고 끝에 풀려났다.”

-암매장된 두 명은 어떤 아이들이었나.

“청각장애와 지적장애를 같이 가지고 있었다. 고아였다. 정신은 멀쩡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보니 보모방에 거의 감금된 채 생활하다시피 했다. 한 마디로 귀찮고 눈에 거슬린 존재였던 것 같다. 밥도 굉장히 조금씩 주거나 굶겼다. 그리고 폭력도 빈번했다. 습관적으로 때렸다. 그 방 앞을 지나가다가 나중에 죽은 여자 아이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벽지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같이 있었다는 다른 교직원 2명과 지금도 연락이 닿나.

“한 명은 중풍이 걸려 광주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나머지 한 명은 전남 나주의 한 장애인 시설 원장이다. 근데 이 사람은 현재 ‘난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고 있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해줄만한 다른 사람은 없나.

“경찰 수사과정에서 증인이 4명 나왔다. 모두 당시 학생들이었다(김씨는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 중 당시 죽은 아이의 시신을 몰래 와서 봤던 증인 1명은 교감에게 엄청 맞았다고 했다. 교감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인다고 하면서 삽 같은 것으로 때렸다더라. 너무 맞아서 학교 담을 넘어 도망가려다가 잡혀서 또 맞기도 하고 그랬다더라. 이건 나도 그 사람의 경찰 진술 내용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럼 그 증인들과 암매장에 가담한 이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나.

“아니다. 당시 학생들과 다른 교사, 교직원들 사이에 소문이 다 펴졌다.”

-세월이 많이 흘러 당시 암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곳도 이젠 아파트가 서 있는 등 진실을 규명하기가 사실상 힘들다. 공소시효도 지났다. 이제 와서 다시 폭로한 이유는 뭔가.

“영화 도가니를 보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 동안 너무 괴로웠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 갔을 때 분노가 다시 폭발하면서 얘기해 버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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