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류현경 “스크린과 브라운관, 둘 다 놓지 않을래”

[쿠키人터뷰] 류현경 “스크린과 브라운관, 둘 다 놓지 않을래”

기사승인 2012-01-02 10:57:00

[쿠키 연예] 배우 류현경의 필모그래피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그리고 주연과 조연을 자유롭게 오가는 독특한 노선을 그리고 있다.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MBC 10부작 드라마 ‘심야병원’의 촬영을 마친 요즘 “드라마의 매력을 새삼 알아간다”며 또 다른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바쁜 행보를 보여 온 류현경은 요즘 16년간 일궈 온 열매를 뒤늦게 추수하는 기분이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심야병원’서 의사가 되겠다는 열정으로 늦깎이 외과의가 되는 여주인공 홍나경 역을 연기한 류현경은 뒤늦게 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의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고 고군분투하는 당찬 캐릭터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며 호평받았다. ‘심야병원’은 아내를 잃은 의사가 살인범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잡기 위해 병원을 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총 5명의 감독이 2편씩 연출을 맡아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형식으로 기획됐다. 매번 바뀌는 PD와 작가들과의 호흡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속이 다 시원해요. 마치 20부작을 찍은 것 같아 짧아도 아쉬움이 없어요. 워낙에 힘들었어요. 여러 명이 연출을 하다 보니 처음에 생각한 시놉시스대로 흘러가지 않은 점이 가장 어려웠고요. 사건에만 중점이 맞춰진 것 같은데, 원래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얘기들도 있었고 멜로는 물론 동료 간의 끈끈한 정도 있었거든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가 빨리 되고, 범죄 스릴러로 변하니까 좀 당황하기도 했죠. 그래서인지 끝까지 응원해주신 분들께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연기 생활 16년째인 류현경은 한때 독립영화 배우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다수의 단편·독립영화에서 연기를 펼쳐온 그는 알고 보면 아역배우 출신. 지난 1996년 SBS 드라마 ‘곰탕’에서 김혜수의 아역으로 데뷔한 류현경은 지난해 영화 ‘방자전’에서 향단 역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더니 이제는 주연 자리까지 꿰차는 위치에 올라섰다. 지난해 ‘시라노: 연애조작단’과 ‘쩨쩨한 로맨스’ 등의 상업영화로 지명도를 높였고, 올해는 옴니버스 영화 ‘마마’와 독립영화 ‘굿바이 보이’, 단편영화 ‘스마일 버스’와 ‘디파처’를 선보이며 바쁜 걸음을 이어왔다.

강산이 변할 기나긴 시간 연기자로 살아왔지만 유독 드라마와는 인연이 깊지 못했다. 지난 2006년 방영된 청춘드라마 ‘일단뛰어’에서는 공동주연으로 출연했지만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종영의 쓴맛을 봐야 했고, 그 외 ‘그녀들의 로망백서’ ‘김약국의 딸들’ ‘단팥빵’ ‘무인시대’ 등의 드라마는 비중 있는 배역을 맡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번 ‘심야병원’을 두고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드라마 섭외가 잘 안 들어 왔어요.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닌 애매한 입장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오래전부터 의사 역을 꿈꿨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심야병원’은 저에게 운명적인 작품이죠. 어느 순간 주·조연에 대한 스스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비중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는데요, 마음을 놓으니 이렇게 좋은 기회가 찾아와 준 것 같아 기뻤죠.”

‘심야병원’은 토요일 밤 12시 20분 방송이라는 물리적인 불리함을 안고 시작했지만, 빠른 전개와 류현경과 윤태영 등 연기파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스릴러와 코믹 등 다양한 장르의 연결 등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시청률은 처음부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며 놀라움을 안겼다.

“영화나 드라마를 찍으면 관객 수나 시청률보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더 피부에 와 닿거든요. ‘심야병원’ 1,2회를 보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신나게 촬영할 수 있었죠. 홈페이지에서 드라마 다운로드 순위도 높았고, 피부로 느끼는 반응이 시청률 뛰어넘었던 것 같아요.”

극중 류현경이 연기했던 나경이는 실제 그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였다. 그래서 더 각별하고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나경이와 내가 너무 닮아 있어서 나는 물론 소속사 사람들도 깜짝 놀랐었다”며 “말투나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생활형 모습까지 너무 똑같았다”고 말했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윤태영과는 바쁜 촬영 일정으로 인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류현경은 “틈틈이 잘 챙겨주시는 모습이 마치 아버지 같았다”며 “원래 연기할 때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정서를 쌓는 시기가 필요한데, 이번에는 워낙 순식간에 촬영을 해서 관계 형성이 안 됐던 것 같다. 소통이 없었던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컸다”고 전했다.

류현경은 최근 가수 장기하와의 친분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우 최강희와 절친한 사이임은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가수로 활동하는 장기하와의 친분은 팬들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이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면서다. 이후 두 사람은 음악의 공통점으로 가까워졌고 공연을 같이 다닐 만큼 편한 친구사이가 됐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데, 장기하 씨 팬이었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성격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요. 저도 영화 찍을 때 상업과 독립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작품만 보는 편인데, 이 친구도 알고 보니 그런 편견이 없더라고요. 인디와 대중의 구분이 없고, 어떠한 기준이나 벽이 없어요.”

‘심야병원’에서 자신의 테마곡이었던 ‘러빙유’를 직접 불러 노래 실력을 뽐냈던 류현경은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는 마니아이기도 하다. 과거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OST에 수록된 가수 이문세의 ‘소녀’를 고운 음색으로 소화해 눈길을 끌었던 류현경은 KBS 라디오 ‘이현우의 음악앨범’의 이충언 PD가 제작한 앨범 ‘곰PD와 절묘한 친구들’의 수록곡 ‘베드 보이(Bad Boy)’에서 파격적인 랩 실력까지 뽐낸 바 있다.



본인의 노래 실력에 대한 장기하의 평가를 묻는 말에는 “별 말 없었던 거 보니 내 노래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답하며 웃다가도 “기사 제목에 장기하 이름이 안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당부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류현경은 내년 초 전파를 탈 SBS 시트콤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과 김조광수의 신작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촬영을 병행하고 있다. 시트콤에서는 여주인공 봉경자 역에 캐스팅돼 샤머니즘을 신봉하며 화투점 운세에 의지하는 강력계 여형사 역을 맡았고, 영화에서는 동성애자로 등장한다.

“시트콤 대본을 읽고 너무 웃겨서 기절할 뻔했어요. 같이 연기하는 오달수 선배님과 임원희, 민호 등도 너무 호흡이 잘 맞고 팀워크가 좋아요. 영화에서는 동성애 연기를 하는데 처음부터 배역에 거부감은 없어요. 단순히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많은 캐릭터이더라고요. 인류애가 있는 사람이요.”

한때 자신의 나이에 맞는 신세대 역을 해보고 싶었던 그이지만, 최근에는 지능이 멈춰져 있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영화 ‘아이엠샘’에서 숀 펜이 선보인 연기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이 같은 생각은 얼마 전 조카가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다. 그는 “조카가 너무너무 예쁘다”라며 “이 어린 작은 것이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린 아이같이 순수하고 맑은 캐릭터를 연기해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연예인 병’이 없는 배우라고 말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보니 당연히 절차나 양해가 필요한 경우에도 배려가 결여된 대우를 받았을 때다. 그럴 때마다 ‘나도 좀 까다로울 필요가 있을까’ 고민을 하지만 천성은 숨길 수 없다. 결국은 또다시 웃고 털어버린다. 계속되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러브콜에 표정관리 중이면서도 연기에 있어서는 늘 긴장을 놓지 않는 것 또한 류현경의 모습이다.


지난해보다 올해 더 많은 성과와 보람을 느꼈듯 새해에는 더 많은 작품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원래 밝고 거리낌 없는 성격인데,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조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한결같고 똑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전하는 류현경의 표정은 16년 차 배우답지 않은 밝고 천진난만한 기색이 가득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박효상 기자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두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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