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때로는 시간이 약일 때가 있다. 기다림만 알면 인생 반을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있듯 곪아 터져야 비로소 새 살이 돋는다. 배우 차현우(31·본명 김영훈)는 태생적 배경이 그러했다.
아버지인 김용건과 하나뿐인 형 하정우에 이어 연기자를 꿈꾸었을 때, 언젠가는 이러한 불가항력적 한계에 맞닥뜨릴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외모나 목소리, 말투까지 친형인 하정우와 닮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한때 그는 그러한 태생적 배경에 몹시 과민하게 반응했다.
자신의 예명을 아버지나 형 이름과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차현우로 정한 것도 자신의 배경을 꽁꽁 숨기기 위함이었다. 가족들 때문에 편하게 연기한다는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003년 ‘극단 유’에 들어가 약 4년간 쉬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오른 것도 연기에 대한 기본과 정석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차현우는 이제는 가족 이야기에 웃으며 말할 만큼 여유가 생겼고, 단단해져 있었다.
“드라마 ‘로드넘버원’에 출연했을 때 하정우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어요. 당시 사흘간 식음을 전폐했어요.(웃음) 참을 수 없을 만큼 싫어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공격적인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포털 검색어에 올랐던 우리 가족 이름이 사라지고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한 거에요. 아, 별거 아니구나. 나 혼자 괜히 오버했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최근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선동열(양동근)의 강속구를 받는 포수 장채근을 연기한 차현우는 이번 작품이 연기 인생의 서막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수상한 고객들’과 드라마 ‘로드넘버원(2010)’과 ‘전설의 고향(2009)’ 등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기에는 그리 역할이 크지 않았었다.
‘퍼펙트게임’은 1987년 5월 16일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인 고(故) 최동원(롯데 자이언트)선수와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선수의 4시간 56분간의 명승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차현우는 극중 정감 있는 호남 사투리를 구사해, 지인들부터 ‘진짜 호남 출신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호남 지역을 가본 일을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없어요. 즉, 전라도 사투리에는 문외한이었죠. 그래서 애초에 오디션을 봤을 때 장채근 역을 생각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감독님이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시키시더라구요. 기억을 더듬이 억양을 나름대로 구사하며 신나게 연기했는데 ‘오케이’가 된 거죠.”
자연스러운 사투리 억양을 위해 공들인 시간은 흥미로웠다. 차현우는 장채근 감독이 있는 전라남도 광주까지 직접 찾아가 많은 조언과 트레이닝을 받았다. 장채근 선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로 군림했고, 한국 프로야구 30년사에서 포수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상을 수상했던 인물.
실제 장채근 선수와 비슷한 체격을 만들기 위해 체중을 늘려야 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체중을 무려 20kg이상 늘리는 등 캐릭터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열의를 펼쳤다.
“살을 쪄야한다고 했을 때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먹었죠. 어느 정도 먹었다고 생각하고 몸무게를 쟀어요. 많이 쪄봐야 94kg 정도일거라고 생각했는데(그의 몸무게는 평소 82킬로다), 막상 재보니 104kg인거예요. 너무 쉽게 쪄서 오히려 허무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스트레스는 촬영이 다 끝나고 시작됐다. 살이 찐 후 맞는 옷이 없다는 것이 가장 컸다. 어차피 체중은 원상복귀 시킬 예정이었으므로 큰 사이즈의 옷을 살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촬영 때는 몰랐던 심리적인 문제도 슬몃 찾아왔다.
“살이 많이 찌니까 나도 모르게 위축되더라고요. 몸도 둔해지고 더 숨도 가쁘고 뭔가 움직이기 싫어지는 그런 거요. 그래도 요즘 열심히 다이어트하며 예전 몸매를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그는 가수 출신이다. 지난 1997년 남성듀오 예스브라운으로 음반까지 내며 활동한 전적이 있다. 항간에는 그룹 OPPA의 멤버로 활동했다는 풍문이 있었으나 차현우의 본명인 김영훈과 동명이인으로 착각해 일어난 헤프닝으로 끝났다.
“음악을 좋아해서 학원을 다니면서 실용음악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음반을 내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못하게 돼서 제가 투입됐죠.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해외 갱스터 랩을 한글로 받아 적고 무대에서 불렀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영어 랩 속에 욕설이 있던 거예요. 그렇게 활동을 접어야 했죠.”
‘퍼펙트 게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선동열 역의 양동근과는 이러한 가수 이력의 공통분모로 더 가까워진 사이가 됐다. 작품을 통해 첫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수 개월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영화 크랭크 업 이후로도 꾸준한 만남과 연락을 이어가는 등 동료 배우 이상의 끈끈한 우정까지 나누고 있다.
“배려심이 깊고 상대를 편하게 하는 친구예요. 너무 고마웠고 빨리 친해지고 싶은데 방법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래퍼였어’라며 음악적인 공통점을 내세웠죠. 동근이가 랩을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그 다음부터 다시는 음악 얘기 안하더라고요.(웃음)”
그는 야구와 유난히 인연이 깊다. 아버지 김용건이 MBC ‘전원일기’에 오랫동안 출연했기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MBC청룡을 응원했다고. 어린 시절 MBC청룡 어린이 회원이기도 했다. 이후 LG트윈스를 지속적으로 응원하며 박경수, 이대형 등의 선수들과의 친분을 쌓아오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영화 ‘퍼펙트게임’은 그와 너무나도 잘 맞는 옷처럼 느껴졌다.
“야구 종목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너무 재미있다고 해줘서 기분이 좋아요. 일각에서는 스포츠 영화라는 인식이 있는데, 극장에 가기까지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선입관 없이 일단 영화 보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정우가 이번 ‘퍼펙트게임’에 출연한 동생의 연기를 어떻게 평가했느냐 물었더니 “그런 얘기를 할 만큼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형이랑 많이 싸우고 자랐다”라며 “아직도 대화하는 걸 쑥스러워하고, 여느 집보다 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구 얘기할 때는 다르다. 평소에 단답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에 반해 야구 얘기를 나눌 때에는 서로 수다 떨기에 바쁘다고.
차현우는 “이번 영화 ‘퍼펙트게임’이 스포츠 영화의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라며 “입소문으로 천천히 가는 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며 깊은 애정을 내비쳤다. 솔직하고 담백한, 누구보다도 뜨거울 열정을 지닌 차현우는 영화 속 장채근의 모습 그대로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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