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전설이 그대로 담긴 안데스를 테마로 칠레-볼리비아-페루-에콰도르-콜롬비아를 거치는 90일 여정을 다이어리형식으로 쓴 여행에세이가 출간됐다.
‘미칠 것 같아 가봤다’란 제목의 이 책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안데스여행기이면서 기존 여행서적과 달리 아름다움만을 노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래서 여행서적 ‘주제’에 너무 비판적이지 않느냐는 평가마저 받고 있다. 따라서 안데스 여행 정보만 얻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효용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글은 40대 중반의 기자인 저자가 잘 다니던 신문사를 때려 치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변화를 찾기 위해 취재차 한번 갔었던 안데스로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안데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하나 내면 좋고 싱글이던 그에게 여행지에서 우연히 사랑이라도 싹트면 더 좋다는 가벼운 마음도 있었고,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떠난 여행에서 자신의 인생 터닝 포인트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더욱 절망할 것이라는 무거운 마음을 동시에 안고서.
하지만 여행은 그런 생각을 깊게 할 겨를도 주지 않은 채 좋지 않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시작 됐다.
한국을 떠난 지 열흘 만에 칠레 한 산골에서 고가의 노트북과 카메라 렌즈를 도난당하는 일에서부터 페루 마추픽추에 갔다가 폭우로 갇힌 일까지 90일 동안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할 수도 있는 일들이 때론 에세이처럼 때론 기사처럼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마추픽추 마을에 갇혀 있을 때 한국대사관의 무대응 일변도에 대한 비판은 기자의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속 시원함이기도 하다. 물론 코너에 몰리는 사건만 쓰인 건 아니다.
여행하는 이들의 로망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거짓말처럼 잔잔하게 이어져 간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짐이 먼저 놓쳐버린 비행기에 실려 날아가 버린 이야기까지 바람 잘 날 없었던 90일의 안데스 여정이 동행한 사진작가인 김진홍씨의 멋진 그림과 함께 담겨져 있다. 논픽션인데 픽션 같은 여행기인 동시에 콜롬비아 6구와 한국의 ‘고소영’ 파워를 비교해 꼬집은 속 시원한 여행기가 바로 ‘미칠 것 같아 가봤다’이다.
기자의 기사체처럼 호흡이 짧아 글쓴이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이 책만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책 표지의 캘리그래피는 ‘웰컴 투 동막골’로 잘 알려진 박병철 교수가 맡았으며 책 편집은 이례적으로 사진을 맡은 김진홍씨가 직접 해 스토리를 잘 살렸다는 평가다. (솔트커뮤니케이션즈·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