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0년대에 동요집 ‘새야새야파랑새야’를 내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35년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고등음악학원으로 유학,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46년 서울대 예술대학 음학부를 창설한 후 서울대 음대 교수,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예음문화재단 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평생 음악을 벗으로 살며 100곡 이상을 작곡했다. 가곡만 100곡에 가깝고, 그밖에 교성곡, 관현악곡, 실내악곡도 다수다. 그 공로로 문화훈장 모란장,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그의 제자들이 100번째 생일을 맞아 음악회 ‘요석 김성태 박사 음악 80년-비바람 속에’를 열기도 했다.
대표곡으로 ‘동심초’, ‘못잊어’, ‘산유화’, ‘이별의 노래’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김기순 이화여대 음대 명예교수, 김기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등 2남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30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 ☎02-3010-2230. 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