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자 영장기각 뒤 자살’…이제 무죄?

‘성폭행 혐의자 영장기각 뒤 자살’…이제 무죄?

기사승인 2012-10-03 16:25:00

[쿠키 사회] 60대 여성이 자신이 치료를 받던 병원의 간호조무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고소했다가 그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두고 네티즌들이 공분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사건 내용을 전하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댓글을 수백개씩 달며 피의자와 법원을 질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단 법원이 이용훈 전 대법원장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정착된 '불구속 수사' 재판 원칙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냐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불구속 재판 원칙 추진 이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건수와 전체 사건 대비 구속영장 청구율은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이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형사재판 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6년 6만2000건에 이르던 구속영장 청구 건수는 매년 감소해 지난해에는 3만7000건에 머물렀다. 이는 불구속 재판이 정착되면서 검사들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할만한 사안만을 선별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건수가 크게 줄었음에도 같은 기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16.4%에서 23.8%로 오히려 7.4% 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관계자는 "요즘 워낙 성범죄만 조명이 되고 있다보니 오해도 많이 생기는데 사실 불구속 재판 원칙은 성범죄뿐 아니라 모든 형사사건에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일례로 최근 음주·졸음운전으로 6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이 현장에서 즉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런 사건까지도 음주 운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정도로 최근 법조계의 불구속 재판 원칙은 정착이 됐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만 없다면 '방어권'은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재판이 불구속 상태가 원칙일뿐 성범죄가 '실형 원칙'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 사건은 합의가 안 됐고 고소인 진술도 명확히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실형의 가능성이 크다. 고소인이 너무 성급하게 판단해 해선 안 될 선택을 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편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 해도 '범죄의 중함' '피해자의 2차 피해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 부분은 철저히 판사의 가치관 등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구속영장을 발부할만한 사건으로 판단되지만 이 사건의 영장담당 판사는 시각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은 재판이 진행됐다면 실형이 선고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제 고소인이 자살했기 때문에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 성범죄 재판의 경우는 고소인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이 절대적인데 고소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10일 평택의 한 병원에서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고 입원한 A씨(61·여)는 이틀 후인 12일 오후 병원 석고실에서 간호조무사 B씨(31)가 환부를 소독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입을 막고 성폭행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B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등 혐의를 부인했고, 이에 경찰은 B씨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등 세 차례의 보강조사를 거쳐 8월 20일 강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가정과 직장이 있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지난달 13일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1일 오전 8시쯤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의 한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려 숨진 채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A씨는 '이제 법 절차는 제가 기댈 곳이 없었다. 흉악범에게 적법한 처벌이 내려지길 하늘에서라도 지켜보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겨 구속영장 기각이 그의 자살에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평택경찰서는 지난달 19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 이제 이 사건에 대한 규명은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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