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북한 병사는 지난 2일 오후 11시 우리 측 철책을 넘은 뒤 가장 가까운 동해안 경비대 건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이 병사는 인근 육군 22사단 내륙 제1소초(GOP) 생활관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해안 경비대 건물 2층에는 병사 20∼30명이 있었고, 불침번을 서던 병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해안 경비대는 낮에 경비를 서고 밤에는 쉰다”면서 “상황병만 근무를 서서 내무반을 돌아보느라 아마도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결국 밤에는 동해안 쪽 북한 경계지역은 무방비나 다름없다고 시인한 셈이다.
북한 병사가 발견된 1소초 부근에서는 CCTV조차 녹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일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녹화 기능이 중지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할 최전선에서 CCTV가 고장 났음에도 합참은 “종종 녹화가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해당 부대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건 아니다”고 변명만 거듭했다.
북한 병사를 발견한 이 부대의 초동보고가 모두 거짓이었으며 수정보고는 합참 상황장교에 의해 묵살 당했다는 사실도 군 기강해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당시 보고체계 부실로 온갖 질타를 다 받았던 합참이 반성은커녕 그때보다 더 심한 허위보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11일 “이런 상습적인 거짓말 때문에 군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2사단이 소속된 1군사령부 상황장교는 초동보고가 허위임을 발견하고 3일 오후 5시7분쯤 합참 상황장교에게 바뀐 보고 자료를 보냈다고 전화로 통고했지만 합참 상황장교는 이를 무시했다. 합참의장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0일 오전에서야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군이 큰 실망을 안겼다. 책임자를 엄중문책하고 경계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라”며 질책했다. 이 대통령이 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군의 기강해이에 대해 강도 높게 질책함에 따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부대는 물론 지휘·보고 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문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