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모두 끝까지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완화의료를 반대했지만 김씨는 무의미한 치료를 하느라 돈과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가까워졌고 하루를 더 살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마지막을 살고 싶었다. 김씨는 집과 병원에서 완화의료를 받으며 죽음을 준비했고, 생의 마지막 순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히 눈을 감았다. 가족들은 김씨가 죽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완화의료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환자 본인의 의지대로 삶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도록 의견을 존중한 것을 옳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살아온 날들을 함께 떠올리고 추억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지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지금 인공호흡기를 매단 채 호흡을 유지하고, 시간마다 찾아오는 통증에 몸부림치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또 자신에게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암, 뇌졸중 등 중증 만성질환자들에게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의학적 치료 방법’이 더 이상 효과가 없고,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이 예상될 때 생의 마지막까지 겪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통증치료 외에도 음악, 미술, 심리치료 등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고 보내는 이와 떠나는 이, 모두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 전체가 완화의료에 속한다.
완화의료를 선택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말기 암환자다. 통증과 호흡곤란, 변비, 소화불량 등의 증상 외에도 자신의 질병과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환자로서 느끼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우울함으로 심리적인 고통까지 겪는다. 입원해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적인 부담도 깊어 간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자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것은 완화의료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다. 수년 전 김 할머니 사건으로 존엄사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관련법이 마련됐지만, 완화의료 병동을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로, 환자는 삶을 포기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가족은 환자를 포기하고 방치하는 장소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완화의료는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이가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보내는 이도 아름답게 놓아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이수희 고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죽음을 실패나 절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완화의료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며 가족과 환자는 그동안의 치료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주 서울성모병원 완화의학과 교수는 “아직도 완화의료를 임종 직전에 시행하는 것으로 아는 환자와 가족이 상당수지만, 완화의료는 환자가 남긴 인생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죽음은 시간을 조금 늦출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지는 꽃도 꽃이며, 지나간 삶이 아닌 내 인생의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죽음은 긍정이며, 죽음도 준비해야 하며, 죽음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완화의료를 선택한다. 죽음은 불행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살아온 날의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Well-dying)이다.
김성지 쿠키건강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