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교제하는 이성의 애완동물을 학대하고 심하게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를 당사자에게 표출하지 못하고 ‘당사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면서도 만만한 대상’을 따로 선정해 화풀이를 하는 이러한 행동은 정신분석학 이론상 ‘치환’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고양이 토사물 씻겨 주려다 폭행치사?
26일 동물보호단체 동물사랑실천협회(이하 동사협)는 지난달 초 서울 서초구에 있는 여자친구의 집에서 고양이(사진)를 폭행해 숨지게 한 A씨를 자체 조사를 거쳐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동사협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3일 고양이의 주인인 여자친구가 고향에 다녀오기 위해 집을 비우자 고양이를 묶어 놓고 화장실 샤워부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발로 수차례 복부와 머리 등 온몸을 때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후 A씨는 죽은 고양이를 쓰레기봉투에 다른 쓰레기들과 섞은 채 경기도 판교의 쓰레기 하치장에 갖다 버리기도 했다.
A씨는 “고양이가 구토를 해 온몸에 토가 묻어 씻겨 주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반항해 그런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사협은 “고양이의 습성상 구토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고양이들이 자신의 토사물을 몸에 묻히지 않는다는 것은 고양이를 길러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반박했다.
자신이 교제 중인 이성의 애완동물을 학대한 대표적 사례로는 이른바 ‘H대 개학대남’ 사건이 있다.
지난 2009년 7월 충남 소재 H대에 재학 중이던 이 모(당시 25세) 씨는 3개월 간 여자친구 정 모 씨가 집을 비운 틈을 타 여자친구가 기르던 강아지 두 마리의 눈에 세제를 넣거나 억지로 먹이는 등 학대했고 결국 한 마리를 숨지게 했다. 당시 이 사건은 큰 파문을 일으키며 다음 아고라에서 이 씨를 비난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증하는 ‘이별 범죄’와 비슷한 흐름
사귀는 이성의 애완동물에 대한 학대 사건 추세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른바 ‘이별 범죄’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연인 간 ‘이별 범죄’ 가운데 살인은 2011년 16건(12월 31일 기준)에서 4개가 훨씬 넘게 늘어난 83건(10월 31일 기준)에 이르렀다. 상해 등 폭행은 전년(8256건) 대비 줄어들긴 했지만 7194건이나 됐다.
동사협 박소연 대표는 “사건 해결이 되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을 뿐 1년에 5~6건의 제보가 들어온다”며 “특히 최근 2~3년간 부쩍 늘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별을 비롯해 애인에 대해 어떤 불만이 생기면 어떻게든 보복을 하고 싶어 한다. 이때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직접 상대방에게 폭행을 가한다”며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며 이런 과정에서 앙심을 풀기 위해 일종의 만만한 대상, 즉 화낼 대상을 변경해 상대방 애완동물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신분석학 이론상 ‘치환’ ‘전위’
이어 이 교수는 “애완동물은 의리가 있고, 애인이 오랜 시간 길러온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애완동물에게 해코지를 함으로써 애인에게 심적 타격과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학과 공정식 교수는 “상대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분노나 스트레스 같은 본능적 충동이 생기는데, 그 충동을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가하면 그로부터 되돌려 받을 보복이 더욱 크다는 걸 인식하고 위험성을 느낀다. 따라서 충동을 상대방에게 직접 행사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인 사람, 혹은 그런 대상에게 해소함으로써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대항할 수 없는 상대 대신 그 보다 약한 대상을 통해 보복함으로써 자신의 불쾌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정신분석학 이론상 ‘치환’ 혹은 ‘전위’라고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신민우 인턴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