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연패 한화, 독수리 팬들 ‘무념무상’

13연패 한화, 독수리 팬들 ‘무념무상’

기사승인 2013-04-15 04:39:01


[쿠키 톡톡] 한화 이글스가 야구장을 인격수양의 도량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13연패에 빠진 코치진이 ‘멘탈 붕괴’에 빠졌다면, 팬들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독수리의 응원석에 목탁까지 등장했다. 12일 경기의 중계 화면에는 목탁을 든 팬이 비춰졌다. 야구장에 목탁이 등장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목 터지게 응원한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에 빠지기보다는, 목탁을 두드리며 이기고 지는 것이 모두 이승의 업보를 쌓는 것에 다름 아님을 깨닫자는 것이다. 핫도그를 들고 비명을 지르던 한화팬들이 10여 경기 만에 수도자가 된 것일까?

다이아몬드를 울리는 목탁 소리에는 독수리 팬들의 심정이 오롯이 담겨 전해 진다. 이글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승과 패의 경지를 넘어서 인간 인내의 한계를 극복하는 템플스테이형 고품격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공 하나, 배트 하나 움직일 때마다 팬들의 인격이 더 깊고 넓어지는 오리엔탈 메디테이션 베이스볼이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지면 욕설을 쏟아내거나 심지어 손에 잡히는 것을 집어 던지는 일부 혈기방장 내지 몰지각한 야구 팬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한화가 10연패를 기록한 이후 상대팀 팬들은 “한화 상대로 이기고 있으면 미묘한 감정이…”(발해·오늘의 유머)라며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묻게 된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종교의 경지에까지 다다른 이글스 팬들의 태도가 프로야구 전체에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타팀 팬들에게까지 감화를 주는 한화 팬들의 이런 모습에는 이글스의 본거지인 충청도 특유의 은근과 끈기도 한 몫 했다. 고향이 충청도인 한 네티즌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페이스북 친구들이 이글스 얘기를 많이 쓰지만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글은 거의 없다”며 “워낙 양반의 고장이라 그런지 한숨을 쉬거나 허탈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썼다. 한화 이글스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팬들의 글 중 가장 격렬한 글을 소개하면 이렇다.

“지금 우리 김응룡 감독님 송장 치를려고 작정했슈?? 워매 이러다 열반가겠슈. 언제 이겨줄거유. 화나 미치겠슈.”

구단마저 버린 공식 페이스북페이지보다 팬들이 만든 한화 이글스 응원 페이지에는 좀 더 독수리 팬다운 글들이 넘친다. 하나 같이 도덕군자들이다.

“전 아직 괜찮아요.”(신민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모든 게 부질없으니리.”(김하영)

“Ryu Can Do It !! 아쉬움을 달래주는군요. 우리 뚱스. 더 멀리 오래오래 날아 올랐으면 좋겠습니다.”(백승권)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느낌표 하나에 담겨진 니르바나를 향한 처절한 내면의 투쟁을 생각하면, 모두가 야구팬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문구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독수리 팬들 앞에서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13일 밤 방송된 코미디프로그램 ‘새터데이나잇라이브 코리아’에서는 김응룡 감독을 가상 인터뷰한 장면이 연출됐다. “어쩌다 12연패에 빠졌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12경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13번째 경기가 이어진 14일 한화는 13연패를 기록했다. 개막 최다연패 신기록이었다. 우문에 현답, 득도의 경지였다. 마음껏 비웃어라, 얼마든지 져주마. 독수리 패들은 혹시 이런 심정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화가 유독 눈에 띄어서 그렇지, 이 시점에 걱정되는 것은 프로야구의 전반적인 수준하락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14일 15개의 안타를 때리고도 4연패를 기록했다. 개막 첫 상대로 한화와 엔씨를 만난 덕분에 잠시 상위권을 유지했을 뿐, 다른 팀을 상대로는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엔씨는 2연승을 기록하긴 했으나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넥센은 한화와 함께 방어율이 6점을 넘어섰다.
리그 전체에 팽팽한 승부와 경쟁보다 승부가 뻔히 예상되는 경기가 이어지면 득도보다 외면이 먼저 찾아오기 마련이다. 프로야구 전체를 보았을 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 중에는 “한화 팬들을 놀리는 것인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것도 기사인가”라고 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정하는 것이 더 비참한 것이다. 이런 것이 스포츠다. 한화가 첫승을 기록하는 그날은 한국 프로야구가 우려와 걱정을 털어내고 한단계 더 도약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을 모든 야구 팬들이 “우리팀만 아니라면…”하며 기다리고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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