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인터뷰] 피투성이 9세 어린이 심폐소생술로 구한 간호사

[집중 인터뷰] 피투성이 9세 어린이 심폐소생술로 구한 간호사

기사승인 2013-04-23 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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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간호사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주한라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6년차 간호사 이지현(26·여)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줍게 말했다. 이씨는 지난 20일 오후 2시 8분쯤 동료들과 함께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오다 제주시 노형동 애조로와 1100도로에서 에쿠스와 마티즈 승용차가 부딪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티즈엔 김모(9)양과 김양의 어머니가 타고 있었다.

신호 대기 중이던 이씨는 갑자기 들리는 ‘쿵’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에쿠스 운전자가 밖으로 나와 “사고났다”고 크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씨는 동승한 운전자에게 부탁해 차를 길가에 세웠다.

충돌 후 보도블록까지 올라간 마티즈는 신호등을 들이받아 차 옆쪽이 휜 상태였다. 사고의 충격으로 조수석 유리창이 깨졌고, 이 틈새로 김양이 밖으로 튕겨 나와 이었고 김양의 어머니는 잠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이씨는 의식을 잃은 채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김양을 발견했다. 에쿠스 운전자가 아이를 안고 인공호흡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씨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김양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김양이 숨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우연한 계기로 따둔 전문 심폐소생술(CPR) 자격증이 구조에 큰 도움이 됐다. 이씨는 “시험과 연수 과정을 거쳐 꼼꼼히 배워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배운 대로 흉부압박과, 기도확보, 인공호흡을 한 사이클 씩 반복했다. 3~5분정도 지나자 다행히 김양의 호흡이 돌아왔다. 이씨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119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김양의 상처를 주시했다. 맥박도 계속 쟀다. 기절해 있다가 깨어나 울부짖던 김양의 어머니를 차분히 다독여주기도 했다. 119 구조대는 김양과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겼다. 김양이 앰뷸런스에 탈 때까지 이씨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양과 어머니는 현재 이씨가 일하는 제주한라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씨에 따르면 머리와 가슴을 다친 김양은 22일 의식이 돌아왔다. 뇌출혈이 있었지만 수술은 하지 않았다. 이씨는 “환자의 상태 회복이 먼저이기 때문에 아직 찾아가보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금까지 환자나 보호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일하는 수술실에는 의식이 없거나 마취된 상태의 환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간호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 길을 선택할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박세환 수습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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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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