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북한의 신형 미사일 실험인가. 18일과 19일, 이틀 연속으로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유도탄)를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19일 "북한이 어제에 이어 오늘 오후 3시쯤 동해 북동쪽 방향으로 단거리 발사체 1발을 동해안에서 발사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날에도 오전 8∼11시에 2발, 오후 2∼3시에 1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 북동쪽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를 앞둔 지난 3월 28∼29일에도 이틀 연속으로 KN-02로 추정되는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바 있다.
정부는 발사체가 중장거리 미사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만큼 일단 강력한 도발로 판단하지는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지 않고 유관 부처별로 회의를 열어 발사체의 정확한 성격과 능력, 북한의 발사 의도와 움직임 등을 분석 중이다.
신형 미사일인 듯
이번에 발사된 북한 단거리 유도탄(발사체) 사거리와 최대 고도 등이 기존 유도탄 정보와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져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시험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19일 “이번에 발사된 유도탄은 기존 무기들과 다른 궤적을 보였다”며 “북한이 신형 대구경 방사포와 신형 지대지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도탄들은 사거리가 100㎞를 넘었고 최대 고도가 30㎞에 달한 것도 있었다.
군 관계자는 “이지스함과 정찰위성을 궤적과 영상을 확보했다”며 “사거리와 고도가 기존에 확보된 자료와 달라 신형무기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3발의 발사체 가운데 적어도 한 발은 300㎜ 이상의 대구경 방사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기존 240㎜ 방사포보다 사거리를 2배 이상 늘린 300㎜ 방사포를 개발했다는 설이 있었지만, 실전배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번 발사체 중 최소한 한 발이 대구경 방사포의 실전배치 전 성능시험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수도권 이남을 위협하는 새로운 북한 무기체계가 출현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300㎜ 대구경 방사포는 러시아가 1983년에 개발해 1987년 실전배치했으며 300여문이 운용되고 있다. 인도와 중국도 사용한다. 우리도 90년대 중반 ‘불곰사업’ 추진 시 300㎜ 방사포를 구입하려 했으나 러시아의 거부로 무산됐다.
북한이 중국의 기술을 도입해 이 방사포를 개발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번 발사에서 300㎜ 방사포 추정 발사체의 탄착점이 비교적 정확했던 것으로 봐 유도기능도 일부 갖췄을 수 있다. 방사포는 미사일과 달리 한꺼번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고 발사 비용도 적게 든다.
신형 단거리 지대지 미사일 KN-09도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군 관계자는 “이번에 발사된 단거리 미사일은 기존의 KN-02와 사거리와 고도가 다 달랐다. KN-09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KN-09은 KN-02를 개량한 것으로 북한은 올 들어 2월과 4월 KN-02를 시험 발사했다. 구 소련제 단거리 미사일인 SS-21을 고쳐 만든 KN-02는 고체연료형 이동식 미사일이다. 최대 사거리는 120㎞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사거리 100㎞ 정도의 단거리 발사체를 집중 발사한 것은 수도권을 타격할 정밀도 높은 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이 미사일을 휴전선 인근에서 쏘면 서울 용산에서 이전하는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까지도 타격이 가능하다.
새로운 발사 장소로 등장한 호도반도
3발의 단거리 유도탄이 발사된 지역은 호도반도로 확인됐다. 이 곳은 중거리 미사일인 무수단의 이동식 발사대가 배치된 동안만을 접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이보다 남쪽인 강원도 안면군 깃대령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왔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북한문제전문가는 “호도반도는 깃대령보다 공해까지 거리가 길기 때문에 기존 미사일보다 사거리가 늘어난 방사포와 KN-09을 시험하기에 더 적절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무수단 발사 위협으로 전 세계를 긴장시킨 뒤 단거리 유도탄을 쏜 것은 통상적인 훈련이나 시험발사로 보기 어렵다”면서 “수도권 정밀 타격용 신무기를 개발이라면 우리에겐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무기 개발로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대화 제의를 희석시키며 5월 들어 이완된 한반도 안보위기를 다시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추정이다.
3차 핵실험→전면전 불사→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위협으로 이어지던 도발 수위로 볼 때 단거리 유도탄 3발 발사라는 ‘저강도 도발’을 택한데다, 궤도도 기존의 미사일과는 다른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 최우방인 중국까지 가세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출구전략’일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사거리 100㎞ 유도탄을, 남쪽이 아닌 동해상 북동쪽을 향해 쏜 것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주민들에게 공언했던 ‘적에 대한 확실한 대처’ 모양새를 취함과 동시에 대남·대미 강경모드에서 탈피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사가 3차 핵실험 이후 나온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의 ‘사각지대’를 노렸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의 2094호는 북한의 모든 탄도 미사일 발사는 추가 제재를 받도록 돼 있지만, 단거리 유도탄은 유엔뿐 아니라 한·미가 ‘심각한 도발’로 보지 않아온 선례를 이용해 새로운 공격 무기를 실험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정부는 19일 통일부 김형석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북한이 유도탄을 발사하는 등 도발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매우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제사회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하라”고 촉구했다. 또 “도발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빨리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주도권 쥐기 포석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굳건해진 한·미 동맹으로 우리 측에 뺏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다시 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도발에 일관된 대응을 보임에 따라 미국과 직접 대화를 유도하기 위해 ‘미사일 이벤트’를 벌였다는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사일 발사 자체만으로 미국의 관심을 다시 끌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대화로 전환되는 국면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지만 내부적으로는 또 다른 군사적 도발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날 나선-금강산 국제관광에 이용되는 유람선 황성호의 출항식을 열었다. 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이날 한 술공장을 현지지도했다. 김 제1위원장은 전날엔 간장, 된장, 당과류 등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공급하는 식료품가공공장인 ‘2월20일 공장’을 찾았다.
대신 북한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개성공단 파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는 내용의 문서를 팩스로 연이어 보내는 등 ‘남남(南南)갈등’ 조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명의의 A4용지 2장짜리 문서를 팩스로 우리 입주기업 7~8곳에 보냈다. 북한은 문서에서 “6일까지 개성공단 완제품과 원·부자재 반출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 및 출입계획을 제출하라는 안까지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앞서 지난 16일에도 개발총국 ‘대변인 대답’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팩스로 우리 측 기업에 보낸 바 있다. 통일부는 협의를 위한 구체적인 날짜까지 제시했다는 북측 주장이 사실과는 전혀 다른 왜곡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김형석 대변인은 “북한이 국내 기업에 팩스를 보내고, 그것을 통해 우리 내부에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는 행위를 했다”며 “북한은 이 같은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우리 정부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제의한 대화의 장에 조속히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신창호 모규엽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