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내가 걷기 싫은 길을 권할 순 없죠”

[쿠키人터뷰] “내가 걷기 싫은 길을 권할 순 없죠”

기사승인 2013-05-28 11:26:01

‘해남에서 서울까지’ 삼남길 개척하는 ‘로드 플래너’ 손성일 아름다운도보여행 이사장

[쿠키 생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삼남길 경기도 구간이 완성돼 지난 25일 개통식이 열렸다. 삼남길은 사단법인 ‘아름다운도보여행’이 조선시대 삼남대로를 바탕으로 개척 중인 장거리 도보여행길이다. 지난해 4월, 228㎞의 전남 구간 개통에 이어 꼭 1년 만에 과천에서 평택까지 이어지는 90.1km의 경기구간이 탄생했다. 아름다운도보여행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코오롱스포츠의 후원, 경기도와 과천·안양·의왕·수원·화성·오산·평택시의 협조로 일궈낸 결과다. 그리고 그 중심에 로드 플래너, 손성일 아름다운도보여행 이사장이 있다.

◇길에 미친 남자, 로드 플래너

“2008년에 제가 카페지기로 있는 아름다운도보여행 회원들에게 삼남길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회원들이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일개 동호회에서 하기엔 너무 큰일이라는 거죠. 그래도 회원 몇 명과 함께 시작한 일이 벌써 반환점을 돈 셈이에요.”

손성일 이사장은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이다. 걷기 좋은 길을 개척하는 ‘로드 플래너’란 말도 그가 만들었고, 역사의 저편에 잊혀졌던 삼남대로를 바탕으로 해남에서 서울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을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도 만들었다. 또 코오롱스포츠에 기획안을 내 후원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에도 스페인의 산티아고와 같은 장거리 도보여행길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11년 코오롱스포츠가 후원을 해주면서 삼남길 개척이 속도를 붙기 시작했죠. 그래서 1년 6개월 만에 해남에서 장성까지 228㎞의 전남 구간을, 또 1년 만에 과천에서 평택까지 90.1㎞의 경기도 구간을 완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에 개통한 지리산둘레길의 경우 2007년부터 시작해 5년 만에 274㎞를 개척했으니 손 이사장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개척 비용도 물론 최소다. 2년 6개월 동안 약 320㎞를 개척하고 운영 관리하는 데 코오롱스포츠에서 3억5000만원을 후원받아 해냈다. 손 이사장은 “환경부에서 2007년 생태탐방로 예산으로 5㎞에 2억5000만원을 책정했는데 우리는 1/100의 수준으로 이뤄낸 것”이라며 “개척팀의 땀과 열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고 길을 대충 만든 것도 아니다. 전남 구간의 경우 개통 거리의 10배에 해당하는 2500㎞를 일일이 걸어 다니며 찾았다. 그 결과 인위적인 시설을 설치하지 않고 숲길, 마을길, 농로, 해안길 등을 연결해 지역의 자연과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을 완성했다.

“경기도 구간은 도시라는 예상과 달리 숲길과 농로가 많이 남아 있어서 놀랐습니다. 걷기 좋은 숨은 길들을 발견해서 기뻤어요. 도시에 살면서도 이런 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게다가 대동법시행기념비, 세종대왕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의 묘역, 권율 장군의 전설이 내려오는 독산성 등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성숙한 도보 문화가 필요해

경기도 구간 개척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해당 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도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

“저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지만 도보여행자이기도 합니다. 내가 걷기 싫은 길을 남에게 권할 수는 없죠. 철저하게 걷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죠. 역사적 고증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삼남대로를 그대로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미 도로로 개발된 그 옆을 따라 걷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매연이나 실컷 마시며 발이나 무릎이 아프도록 아스팔트만 걷게 되겠죠. 하지만 길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야 생명력을 얻습니다. 그러니 걷고 싶은 길을 만들어야죠. 그러다보면 사람들이 잊혀가는 삼남대로에 대해, 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거고, 찾는 이들로 인해 그 지역 경제도 활성화되는 겁니다.”

지자체 별로 내세우고 싶은 문화유산이 많았지만, 그는 최대한 아스팔트가 아닌 걷기 좋은 흙길, 숲길을 고집했다. 손 이사장은 “경기도 구간은 최소 60% 이상 걷기 좋은 길”이라고 자부했다. 길을 개척하면서 사유지는 피했는데 허락만 구한다면 더 좋은 코스가 될 여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개척자가 좋은 길을 찾더라도 도보여행자들이 성숙한 도보 문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거나 농작물에 손을 대는 등 지역주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지역주민들도 흔쾌히 길을 내주겠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 난 기자 na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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