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자잖아?” 한 젊은 경찰관의 ‘자살 기도 중학생 구출기’

“우리 남자잖아?” 한 젊은 경찰관의 ‘자살 기도 중학생 구출기’

기사승인 2013-06-19 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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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한 젊은 경찰관의 ‘자살 기도 중학생 구출기’가 화제다. 이 경찰관은 하루 하루 지역 순찰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 작은 단서 하나로 사춘기 청소년의 잘못된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

19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화곡지구대 소속 이모 순경은 지난 13일 오후 식사를 하기 위해 한 식당으로 향하던 중 무전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의 지령을 듣게 됐다.

“순 00호 자살 기도자 발생, 화곡 xx동으로 출동 바람.”

동생이 자살한다는 문자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는 신고였다. 이 순경은 식사도 뒤로 미룬 채 급히 핸들을 돌려 신고자의 주소지로 향했다. 동시에 119에서는 자살 기도자의 위치추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순경은 이동 중에도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나요?, 문자 내용이 뭐죠?”라는 등 자살 기도자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신고자와 통화를 계속했다.

한 초등학교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신고자를 만난 이 순경은 주변수색을 시작할 무렵 기다리던 위치추적 결과를 받게 됐다.

‘자살 기도자 위치, ○○주택가 부근 반경 100미터’

해당 지역은 아파트와 빌라 수십 채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반경 100미터라는 단서가 나왔어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나 다를 게 없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아파트·빌라마다 옥상 출입문이 열려 있는 곳은 전부 뛰어올라 갔다.

그렇게 몇 개 동을 뛰어 다녔을까. 다른 동 수색을 위해 1층으로 내려온 이 순경은 순찰차에서 내려 울먹이며 통화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이 순경은 촉각을 곤두세워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 됐어!”


순간 이 순경은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차량 통행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에 주목했다. 이 지역 주택가 주변에서 전화로 차량소음이 들릴 정도로 시끄러운 곳은 OO아파트 밖에 없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그동안 빈집털이 예방을 위해 한 집, 한 집 순찰을 돌면서 기억해 뒀던 아파트와 빌라들의 특징이 본능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순경은 시간을 벌기 위해 아이의 엄마에게는 계속 통화를 하고 있으라고 부탁한 후 신고자인 아이의 형과 함께 그 아파트로 향했다.

경비원을 통해 옥상문이 열린 동들을 확인했고, 세번째 동에서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도망치듯 계단을 힘껏 뛰어 올라갔다. 이 순경은 있는 힘을 다해 뒤를 쫓았고, 옥상에 오르기 직전 겨우 아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이 아이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두라며 심하게 저항했다.

이 순경은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형을 먼저 내려 보내고, 단둘이 앉아 아이를 설득했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로 인해 어머니 혼자 생계를 맡아야 하는 어려운 집안 형편, 가슴부위에 생긴 혹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녀야 하는 힘겨운 학교생활, 아픈 몸으로 운동을 못해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괴로움 등 아이는 자신의 고민을 말하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 순경은 “나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어. 지금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리, 남자잖아?”라며 아이를 설득했다.

그렇게 30분 간의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이 순경은 아이를 전문 상담교사(강서구청 보건 정신상담소)의 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줬다.

그리고 이 순경은 아이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형이랑 카톡 친구 할 수 있지?”

이 순경은 “소중한 한 생명을 살린 보람이 크다. 내가 경찰관이란 사실이 뿌듯하다”며 웃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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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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