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1억6000만원 상당의 금품 로비를 받은 혐의로 10일 구속됐다. 역대 국정원장(9명) 출신 중 개인 비리로 구속된 첫 사례다. 원 전 원장은 지난 3월 21일 퇴임식 당일 출국금지 된 이래 줄곧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가 결국 110여일 만에 구치소로 가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김우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있고 기록에 비춰 증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원 전 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 청사에서 대기하던 원 전 원장은 시쯤 호송차량에 올라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여환섭)는 황보건설 대표 황모(62·구속)씨로부터 현금 1억1000만원과 4만 달러(약 4500만원), 400만원대 선물을 받고 그 대가로 공사 수주와 인허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준 혐의로 지난 5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선물은 오스트리아 주얼리 브랜드 스와로브스키가 2010년 호랑이해를 맞아 출시한 크리스털 호랑이 모형과 20돈짜리 순금 십장생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원 전 원장은 앞서 불법 정치·선거개입 혐의로도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황씨가 원 전 원장에게 금품을 제공한 내역을 기록한 개인 수첩, 황씨 및 황보건설 직원의 진술 등을 주요 증거로 제시했다. 이에 맞서 원 전 원장 측은 2010년도 생일 선물 외의 금품은 받은 적이 없고 전직 고위 공직자로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법원을 납득시키는 데 실패했다.
검찰은 올 초부터 원 전 원장과 황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벌였다.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이후 특수1부가 이 사건을 맡았고, 지난 5월 말 황보건설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당시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한창 진행할 때였다. 수사 주체는 달랐지만, 두 수사의 목표는 ‘원세훈’으로 동일했다. 원 전 원장은 불법 정치·선거개입 혐의로는 구속을 면했지만, 동시에 진행된 금품수수 의혹 수사의 칼날은 끝내 피해지 못했다. 검찰이 지난 정부와의 선긋기 차원에서 ‘작심하고’ 원 전 원장 관련 비리를 파헤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