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나르는 등 투쟁대열에 동참한 최 할머니는 시위 참가자들이 다수 구속되자 전교생들의 시험거부 투쟁, 이른바 ‘백지동맹’ 사건을 주도했다. 최 할머니는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데 이어 다음해 1월 퇴학을 당했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11월 9일 구속자 석방과 조선 독립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시험지에 아무 것도 시험지에 쓰지 말고 운동장에 모이자는 호소문을 배포한 것이다. 이 사건은 총칼을 찬 일본경찰이 학교를 제 집처럼 드나들던 당시 상황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로 전국 모든 여고가 학생독립운동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다.
최 할머니의 가족들은 해방 이후 국가유공자 등록을 수차례 신청했으나 백지동맹의 주동여부가 불확실하고 옥고를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광주시 부교육감을 지낸 이재민 순천향대학교 교수와 이재균(치과원장)씨 등 6남1녀가 있다. 발인은 24일 오전 9시, 빈소는 광주 쌍촌동 광주한국병원(062-380-3444).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