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필수약도 떠나는 현실…이중약가제 ‘사각지대’

국가필수약도 떠나는 현실…이중약가제 ‘사각지대’

기사승인 2025-06-02 06:00:04 업데이트 2025-06-02 08:17:02
오리지널 의약품의 국내 철수 사례가 잇따르면서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이중약가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오리지널 의약품의 국내 철수 사례가 잇따르면서 신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이중약가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제네릭(복제약) 출시와 함께 적용이 종료되는 구조로 인해 국가필수의약품마저 시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제약업계는 이중약가제도의 확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이중약가제도는 환급형 위험분담제(RSA) 방식을 써 일부 항암제·희귀질환치료제에 한정 적용하고 있다. 약가 공개로 인한 해외 참조 가격의 하락을 막으면서, 국내 환자에게는 환급을 통해 실질적인 치료 접근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이 출시되면 약가가 공개되고, 이중약가 적용은 종료된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당뇨병 치료제인 ‘포시가’(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의 특허 만료 뒤 다수의 제네릭 출시와 함께 약가 인하 압박을 겪고 결국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암젠코리아의 경우 건선성 관절염 치료제 ‘오테즐라’(성분명 아프레밀라스트)의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오테즐라는 2017년 국내에 도입됐으나 급여 등재에 실패했고, 이후 제네릭이 먼저 보험 적용을 받아 출시되면서 2022년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파킨슨병 치료제들도 잇따라 철수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의 ‘미라펙스서방정’(성분명 프라미펙솔), 로슈의 ‘마도파정’(성분명 레보도파)은 지속적인 약가 인하와 제네릭 경쟁 심화로 공급을 멈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공급 위기는 이어진다. 풀베스트란트 성분의 오리지널 유방암 항암제인 ‘파슬로덱스’가 제네릭 출시에 따라 오는 8월 약가 인하가 예정되면서 국내 공급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유방암 1차 치료제로 권고되는 이 약은 지난 2007년 국내에 출시됐으며, 지난해 11월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보령의 ‘풀베트주’, 한국코러스의 ‘엘브라칸주’ 등 제네릭이 출시되면서 약가도 절반가량으로 떨어질 상황에 놓였다. 공급사인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약가 가산 연장을 위한 재평가를 신청한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중약가제로 도입한 오리지널 의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제네릭이 나오면 표시가를 공개하도록 돼 있다”며 “이미 약가는 낮은 수준인데 제네릭이 나올 때마다 가격이 떨어지면서 오리지널이 제네릭보다 저렴한 약가 역전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나마 시장에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가 이중약가제인데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오리지널 제품들이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최혜국 약가참조 정책’(Most Favored Nations, MFN)에 따라 국내 제약 환경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당 정책은 미국 내 의약품 가격을 해외 주요 고소득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의 약가를 기준으로 자국 내 약가를 인하하고 다국적 제약사에 동일한 가격으로 미국에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면, 미국 시장 의존도가 큰 다국적 제약사로서는 한국에서 제품을 철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신약 약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 40% 낮은 수준”이라며 “MFN이 시행될 경우 한국 약가가 글로벌 제약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국적 제약사들이 낮은 약가가 전 세계 가격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국내 신약 출시를 주저하거나 기존 제품의 약가 인하 승인조차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이중약가제도의 확대를 촉구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환자에게는 실질 약가로 공급하고 표시가를 유지해 해외 참조를 피할 수 있도록 이중약가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해외 수출 신약에만 이중약가를 허용할 게 아니라 국내에 진입한 신약에도 제도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이중약가가 일부 약제에 한정돼 환자와 제약사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정부 재정 부담 없이 신약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인 만큼 폭넓은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중약가제의 개선을 위해 현장 의견을 반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국내 개발 신약에 대해 이중약가 계약이 가능하단 조항을 넣은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 일부 개정안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혁신형 제약기업 △식품의약품안전처 신속심사 허가 △국내 임상 수행 조건을 만족한 경우 기존 환급형 위험분담제 대상 약제처럼 이중약가제를 적용한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관계자는 “이중약가제도는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영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시점”이라며 “제도 개선사항에 대해서는 향후 현장 의견 등을 적극 수렴해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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