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블랙아웃, 혼란?…우린 ‘목숨’을 걱정한다

[친절한 쿡기자] 블랙아웃, 혼란?…우린 ‘목숨’을 걱정한다

기사승인 2013-08-16 10:42:01


[친절한 쿡기자] 요즘 ‘블랙아웃’ ‘순환단전’이란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대정전’을 뜻하는 블랙아웃이란 전력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전체전력망이 일제히 끊겨버리는 상황입니다. 순환단전은 이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미리 정해놓은 순위(1순위가 주택·아파트·일반상가)대로 전력을 강제 차단하는 조치입니다.

블랙아웃이나 순환단전 상황에 접어들면 누구나 떠올리며 우려하는 것이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피해인데요. 여기서는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피해 같은 거창한 개념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주도에 사는 홍성모(35·사진)씨는 10년째 침대 위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 2번 경추골절, 좌측완관절골절, 경수부 척추손상…. 한마디로 사지마비, 호흡부전마비 신세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는커녕 숨조차 쉴 수 없습니다.

2003년 해병대를 제대한 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뛰어든 공사현장 아르바이트. 3m 지붕 위에서 건축자재를 아래 차량으로 던지다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재와 함께 떨어졌고, ‘너무 아파서 죽지 못한 것 같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갑자기 전기가 끊기면…‘죽을 수도’

이런 성모 씨의 삶을 지탱해 주는 건 전기로 작동하는 인공호흡기와 석션기(가래 빼는 기계)입니다. 만일 인공호흡기가 멈추거나, 가래가 끓을 때 바로 석션기를 돌려 제거해주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전기가 끊기면 성모 씨는 남들처럼 혼란스럽거나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날아가는 겁니다.

만일 순환단전이 시작돼 성모씨가 사는 아파트가 단전대상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석션기입니다.

전기가 끊겨도 배터리로 2~3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인공호흡기는 대상마다 1시간인 순환단전이 돼도 큰 걱정은 없지만 석션기는 오로지 전기로만 작동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로도 가동시킬 수 있는 휴대용 석션기는 40만원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오랜시간 투병생활로 정부지원금 60만원이 수입의 전부인데다 이 중 절반이 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나가버리는 성모씨 가정은 살 엄두도 못 낸다고 합니다.

성모씨가 하루에 가래가 끓는 순간은 하루에 30~40회. 만일 순환단전 사전 통보가 직전에나 이뤄지고 단전되는 순간에 가래가 끓기라도 한다면 정말 최악의 상황입니다.

순환단전 통보 얼마나 전에…“모른다”

전력수급경보는 ‘준비-관심-주의-경계-심각’ 순으로 이뤄집니다. ‘경계’ 단계에서 순환단전에 대한 고려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이전 단계에서 미리 병원 응급실로 성모씨를 옮겨놓는 겁니다. 그런데 성모씨 어머니에 따르면 순환단전이나 블랙아웃이 확정된 것도 아닌, 이렇게 기약도 없는 상황에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다거나 하는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응급실에 무작정 들어가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아니면 일반 병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건 또 돈이 문제입니다.

순환단전이 최소 1시간 전에는 통보가 돼야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2011년 9월 15일(당시에는 사전통보가 되지 않아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음) 이후 사례가 없어 얼마나 빨리 사전통보가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전력에 물어봐도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 사정이 있는 분은 관심, 주의 단계에서 미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국내 ‘생명유지 장치 요금제’ 이용, 총 3756호

성모씨와 같은 혹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을까요. 공식적인 통계는 찾지 못했지만 한국전력의 ‘생명유지 장치 요금제’ 가입자 수가 3756호라는 것만 참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들이 가진 각각의 조건은 다를 겁니다. 위에서 말한 성모 씨 내용도 일어나기 보단 안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겁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블랙아웃, 순환단전이란 말이 거론될 때마다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겁니다.

별다른 메시지는 없습니다. 그저 남들에겐 ‘혼란’이지만 자신에겐 ‘공포’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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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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