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는 16일 물의를 일으킨 합창단 지휘자의 책임을 물어 중징계하기로 즉각 결정했지만 누리꾼 등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는 이날 “시립소년소녀합창단 이모(37·여) 지휘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건하고 엄숙하게 조국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광복절 축하공연에서 합창단원들이 사회주의 혁명가의 옷을 입고 공연을 하도록 진행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시는 해당 지휘자의 임기가 올해 말로 끝나기 때문에 해촉과 정직, 강등 등 중징계 가운데 비교적 가벼운 정직 정도의 중징계만 받아도 사실상 해촉과 같은 성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의 발단은 48명으로 구성된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지난 15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회관에서 애국지사와 광복회원, 시민 등이 참석한 광복절 기념행사를 가진 자리에서 비롯됐다.
합창단원들은 이날 당초 흰색 한복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머리에 태극기를 꽂고 첫 곡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곡인 ‘광주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합창단원들이 저고리를 벗자 체 게바라의 얼굴과 영문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검은 상의가 참석자들의 눈에 거슬리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쿠바 최고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 전투를 통해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인물로 39세가 되던 1967년 10월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어린 나이의 합창단원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공연을 마쳤지만 기념식장의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은 공연이 끝난 후 강운태 광주시장에게 “광복절 기념행사의 취지와는 맞지 않은 옷차림인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강 시장은 “진상을 파악한 뒤 관계자를 문책하겠다”고 답했고 담당 지휘자 이씨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은 직후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씨는 경위서에서 “두 번째 노래를 하면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지난 6월 정기공연 때 구입한 상의를 입혔던 것”이라며 “흰색과 대비되는 검정색 옷을 골랐을 뿐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씨는 “48명 전원이 같이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어 벌어진 일로 고의가 없었다”며 “체 게바라가 그려진 옷은 예산이 부족해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구매해 합창단원들에게 나눠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합창단원들은 지난 6월 22일 어린이들의 꿈과 도전을 주제로 한 ‘나는 여기 있었네(I was Here)’ 음악극 공연 당시 단체복으로 문제의 옷을 샀던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시는 기념행사 리허설을 한번도 하지 않아 합창단원들이 그 같은 옷을 입었는지 사전에 몰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누리꾼들은 고의가 없었더라도 광복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었다는 반응을 주로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단순히 ‘공연의상’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광복절’의 의미와 상반되는 의상으로 판단돼 중징계를 결정했다”며 “아직 구체적 징계위 소집일자는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