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국가정보원은 홍순석·이상호·한동근씨 등 통합진보당 간부 3명을 구속시킴으로써 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내란음모 수사에 있어서 첫 고비를 넘겼다. 이제 수사는 RO의 총책으로 지목됐고, 이미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진보당 이석기 의원 혐의 입증에 집중될 전망이다. 이 의원에 대한 신병확보 여부는 이번 수사의 최대 관건이다.
수원지법은 지난 30일 홍씨 등 3명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고 밝혔다. 공안당국이 그간 3년간의 내사를 통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 자료를, 적어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내줄 만큼은 축적했음을 의미한다.
공안당국은 RO의 지난 5월 12일 비밀회합 때의 녹취록을 결정적 증거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당시 이 의원은 모두발언을 통해 “전쟁을 준비하자”며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하고 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를 갖춰 물질·기술적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전시상황이라든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와 가스·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 등의 발언을 했다.
국정원은 RO 조직이 5월 회합 외에도 2010년 이후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40여차례 모임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RO 핵심 인물들만 참석하는 소규모 모임이 대부분이었고, 5월 회합 때와 마찬가지로 100명 이상이 참석하는 비정규 모임은 1년에 몇 차례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사상 검증과 함께 ‘주체사상’ 등의 학습도 이뤄졌다고 한다. 공안당국은 5월 이후 한 차례 정도 더 대규모 회합이 있을 것으로 보고 RO의 동태를 감시했지만, 수사 기밀이 유출됐는지 이후 특이 동향이 포착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이 5월 회합을 주목하는 것은 당시 모임이 즉흥적으로 성사됐거나, 단순히 토론의 자리가 아니라 이런 지속적인 사전 모임을 통한 구체적 전략·전술과 정세 판단 속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RO 조직원들이 구체적 활동 내용 등을 미국과 중국을 경유하는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은 정황도 포착했다. 그 중심에는 조직 지도자로 받들어지던 이 의원이 있다는 것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이 의원은 RO 활동을 할 때 자신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상당히 은밀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조직 관련 문건이나 지시 사항을 자료로 남기지 않고, 머릿속으로 기억해서 전달하는 식이었다고 공안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국정원은 이 의원이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도 RO의 치밀한 물밑 작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을 제도권 입성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는 뜻이다. RO 비밀 회합 때 ‘이석기 대표님을 어떻게 잘 모시냐’ ‘의회에 진출 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냐’ 등을 논의하는 내용도 포착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공안당국은 이 의원의 당선 이후 활동 내역도 정밀 분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