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이제 스파이들은 뭘로 통화하나…노키아의 추억

[친절한 쿡기자] 이제 스파이들은 뭘로 통화하나…노키아의 추억

기사승인 2013-09-06 15:13:01


[쿠키 IT]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습니다. 이번 인수는 오랜 시간 시장을 호령하는 이들도 급변하는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면 언제든 ‘왕국’에서 ‘부분’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사례를 잘 보여줍니다.

기자는 헐리우드 액션·스릴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던 학생 시절 노키아라는 회사를 처음 알게 됐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면 스파이나 정부 비밀요원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 숨어 은밀하게 정보를 교환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리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항상 그들이 쥐고 있는 휴대전화 액정화면 아래에는 (모토로라 스타택이거나) ‘Nokia’가 찍혀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처럼 회사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얼핏 봐서는 그다지 좋아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디자인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노키아는 항상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보는 영화마다 등장하니 어느 순간부터 ‘도대체 저 회사는 뭐 길래’라는 식으로 노키아 휴대전화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한국시장에서만 죽을 쑤고 있어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있는 부동의 1위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스파이들도 ‘기기변경’을 하더군요. 그들의 손에서는 HTC, 아이폰, 블랙베리 등이 더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세계 휴대전화 트렌드가 일반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아예 사라진 건 아니죠. 최근에도 여러 영화에서 노키아를 볼 수 있었지만 예전 같은 압도적인 느낌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기자는 노키아의 흥망성쇠를 딱딱한 시장조사 보고서나 언론 보도가 아닌 영화를 통해 실감하곤 했습니다.

노키아는 지난 1865년 창립자 프레드릭 이데스탐이 핀란드 남서부 지방에 펄프공장을 세운 후 1902년 전기 업종으로 사업모델을 전환했습니다.

1987년에 최초의 휴대전화 ‘모비라시티맨’, 1992년 최초의 GSM표준 휴대전화 ‘노키아1011’을 내놓으며 기반을 다진 노키아는 1994년 ‘노키아2100시리즈’부터 본격적인 ‘제왕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노키아2100시리즈는 2000만대가 팔렸고, 1997년 출시한 노키아6110은 무려 3억5000만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며 2005년 휴대전화 10억개 판매라는 금자탑을 달성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변해가는 트렌드 속에서 그들은 ‘도취’만 됐을 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잠시 졸았다가 깨어났을 때 이미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이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실적이 워낙 철옹성이었던 덕에 2011년까지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긴 했지만 회사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하며 적자에 허덕였고, 결국 2013년 9월 3일 MS에 인수되기에 이릅니다.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남을 밟지 못하면 자신이 밟히는, 남을 먹지 못하면 자신이 먹히는, 그리고 잠시라도 방심하면 약자로 전락하고 밟히고 먹히는 무한경쟁 시장의 냉혈한 본성은 ‘제왕’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노키아 전화를 손에 든 영화 속 스파이의 모습은 영영 추억이 돼버릴지, 아니면 MS의 우산 아래에서 극적인 명예회복를 이룰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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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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