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IT] 1983년 애플은 IBM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마케팅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펩시콜라 CEO인 존 스컬리 영입을 시도했다. 당시 ‘꽤 주목받는 기업’에 불과했던 애플이 그를 CEO 자리에 앉히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평생 설탕물이나 팔겠습니까? 저와 같이 세상을 바꾸겠습니까?”라는 말로 스컬리를 끌어당겼고, 둘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손을 잡았다. 그러나 개발자 성향이 강한 잡스와 마케팅 마인드로 무장한 스컬리는 결국 충돌했다. 잡스는
2년 뒤 이사회에서 스컬리의 건의로 해고된다.이 사건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당신, 그렇게 못할 걸(I don’t believe you’ll do it).” “두고 봐(watch me).”
스컬리가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포브스 글로벌 CEO 컨퍼런스’에서 잡스 해고에 관한 비화를 전했다고 포브스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가 잡스를 해고한지 28년 만이다. 스컬리가 밝힌 해고 비화는 영화 ‘잡스’에서 그려진 모습과도 어느 정도 흡사하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약 400명의 CEO가 모인 행사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스컬리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잡스와 내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굳게 믿었고 실제로도 정말 사이가 좋았다”며 입을 뗐다.
여기서 스컬리가 말한 ‘그 일’은 당시 판매가 부진했던 ‘매킨토시 오피스’를 둘러싸고 생긴 그와 잡스의 갈등이다. 1985년 출시된 이 제품에 대해 스컬리는 “컴퓨팅 파워가 약해 장난감이라고 조롱을 당했었다”고 떠올렸다.
스컬리는 “매킨토시 오피스의 실패에 크게 낙담한 잡스가 어느 날 내게 와서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광고물량을 더 늘리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잡스는 야심 차게 준비한 작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자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제왕’이라고도 불렸던 스컬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미 매킨토시 오피스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스컬리는 “잡스에게 ‘소용없는 짓이다. 매킨토시 오피스가 안 팔리는 건 비싸서도 아니고 광고가 적어서도 아니다. 만일 당신 생각대로 한다면 회사가 위험해진다’고 말했지만 그는 강하게 반대했다”고 말했다.
스컬리는 “난 결국 ‘계속 그러면 이사회로 갈 수 밖에 없다’며 마지막 카드를 던졌고, 잡스는 ‘당신은 그렇게 못할 거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난 잡스에게 ‘두고 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잡스는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며 “당시 판매중이던 컴퓨터 리사와 애플3는 이미 실패한 상태였고 애플2의 판매 수명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애플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이후 스컬리도 잡스를 인정하게 됐다.
스컬리는 “난 실수가 곧 해고를 의미하는 곳에서 ‘경쟁자로서의 리더십’과 빌 게이츠나 잡스가 한 것처럼 ‘(새로운) 산업을 형성해 갈 때의 리더십’의 차이를 이해할 만큼 경험의 폭이 넓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왜 잡스를 찾아가 ‘다시 돌아와서 회사를 이끌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했어야 했는데) 결국 하지 않았다. 그건 내 인생의 끔찍한 실수다. 왜 내게 그런 슬기로움이 없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이 그렇듯, 나도 해고됐다”고 말했다.
스컬리는 잡스를 해고한 후 제품의 다양화, 라인업의 세분화를 추구하며 애플을 이끌어 나갔지만 1993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뉴턴’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해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