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송전탑 들어오면 농사도 못 짓는데…” 밀양 주민들, 비 젖은 움막 속에서 한숨만

[르포] “송전탑 들어오면 농사도 못 짓는데…” 밀양 주민들, 비 젖은 움막 속에서 한숨만

기사승인 2013-10-08 15:38:01
[쿠키 사회]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왔어요. 송전탑이 들어오면 농사도 못 짓는데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고압 송전탑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인 4개면 구간(단장·산외·상동·부북) 주민들은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한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이 지역을 떠나서는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린 8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의 움막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움막 안 어두컴컴한 자리에서 비에 젖은 웃저고리를 말리던 박혜숙 할머니(78)는 “젊은 시절 시집와서 이곳에서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논 1500평과 송전탑 건설 현장 입구에 임야 700평 정도 가꾸면서 살고 있다”며 “보상금 받고 여기를 떠나 어디로 가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나는 끝까지 여기서 묻힐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정순(72)할머니는 “평생을 살아온 곳에서 400만원 정도 받고 나가라면 갈 수 있겠느냐. 어차피 송전탑에 흘러나오는 전자파로 오래 살지도 못할 건데 여기서 죽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난 2005년 이후 진행된 수십차례의 보상 협의에서 상처를 받았고, 이 와중에 11차례나 공사가 시작되고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마을 주민들은 한전을 불신하고 있다. 결국 보상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8년간 끌어오던 협상이 무산된데 대한 불신의 벽이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닫게 만든 것이다.

송전탑 반대 농성 현장에서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웅덩이를 파고 목줄을 설치해 줬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논란을 빚었다. 마을 청년회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강력하다는 상징적 의미로 그 같은 퍼포먼스를 한 것을 언론이 과장되게 보도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빗속에서도 공사가 강행되자 주민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거둬들이지 못한 농작물이 눈에 선하다. 상동면에서는 이 지역 특산물인 감(반시)을 지금 당장 수확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감 농사는 대풍을 맞았지만 상동면 일대에 빽빽하게 매달린 감은 점점 상품가치가 없는 홍시로 변해가고 있다.

10㎏ 한 상자에 2만 원씩 받을 수 있고, 평균적으로 가구당 800∼1000상자를 생산하며, 서울로만 올라가는 감 판매량이 60여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을 농사를 지어 당장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홍준표 경남지사와 엄용우 밀양시장이 송전탑과 관련해 외부단체의 간섭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촉구하는 호소문을 잇달아 발표했다. 서울에 있는 한전 본사 앞에서는 공사 반대 대책위 관계자 4명이 지난 2일부터 7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밀양=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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