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11년 ‘DTD(Down Team Down·‘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의미의 신조어) 굴욕’의 마침표를 찍은 LG트윈스의 2013년이 끝났습니다. 20일 잠실구장에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플레이오프(PO) 4차전에서 LG는 두산베어스에 1-5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1차전부터 발목을 잡은 실책이 가장 큰 패인이었는데요. 이로써 LG는 PO 전적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이 무산됐습니다.
“솔직히 걱정됩니다. 그러니까 기자님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이날 경기가 끝난 후 잠실구장 인터뷰룸에 들어선 ‘패장’ 김기태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던 중 언론을 향해 한 가지 부탁을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페넌트레이스 때 선수들이 정말 너무 잘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올라 온 포스트시즌(PS)에서 긴장한 나머지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솔직히 1년 내내 해 온 선수들의 고생이 (PO 4경기로) 묻혀 버릴까봐 걱정이 됩니다. 충분히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는 선수들입니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당연히 질책을 해주시되….”
김 감독이 기자들에게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고 대놓고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도 하고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기자라는 존재가 밖에서 볼 땐 참 간사하고 사악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잘할 땐 보는 사람 민망할 정도로 온갖 미사여구를 다 갖다 붙여 칭찬해주고, 그러다가 실수라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마 위에 올려 난도질을 해댈 때가 있으니까요. 김 감독도 이런 부분을 걱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년 내내 ‘가장 핫 했던’ LG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며 조회수(PV), 판매부수, 시청률 재미를 쏠쏠하게 본 언론이 단 몇 경기로 비난 일변도로 돌아서면 선수들의 상처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죠.
비록 한국시리즈까지 가진 못했지만 LG트윈스는 2013년 프로야구의 ‘키워드’였습니다. ‘올해도 중하위권’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보란 듯이 깨뜨리고 ‘+20(74승54패)’으로 정규리그 2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건 앞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었습니다. LG 박용택 선수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우스개 소리로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에 간첩보다 많이 숨어 있다는’ LG팬들은 모조리 ‘자수’했습니다. ‘나 사실은 LG팬이다’라고 당당히 밝히는 ‘엘밍아웃’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성적도 성적인데다 5월 23일 삼성전 권용관의 홈스틸(공식적으론 ‘야수선택’으로 기록됐음), 6월 2일 KIA전 9회 4점차 역전승, 10월 5일 두산전 타격왕과 PO직행을 동시에 확정짓는 이병규(9번)의 3루타 등 소위 ‘소장가치’가 다분한 장면들을 연출하며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올해 프로야구 최대 이변 1위로 LG의 가을야구 진출이 뽑히기도 했고, 4차전이 끝난 직후 야구에 잔뼈가 굵은 몇몇 베테랑 야구 기자들은 트위터 등에 ‘그래도 올해의 팀은 LG’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김 감독이 왜 기자들에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1년 간 이렇게 칭찬할 구석을 많이 이뤄놨는데 단 몇 경기로 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억울하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겠습니까.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김 감독이 잠실구장 인터뷰룸에 들어설 때마다 기자들에게 질문 시작하라는 의미로 하는 ‘멘트’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그걸로 올해의 LG트윈스를, 그리고 LG팬들을 향한 한마디로 대신하겠습니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갑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