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그 지지 않는 푸르름에 관하여

담양, 그 지지 않는 푸르름에 관하여

기사승인 2014-02-03 09:57:00


[쿠키 생활] 담양의 겨울은 싱그럽다. 하늘은 파랗고 풀도 푸르다. 흐리멍덩한 잿빛과 칙칙한 갈색의 겨울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담양이 제격이다. 쏴 시원한 바람소리가 눈에 보이는 대나무 숲 사이로 슬쩍 뒤꿈치를 들어 담장 안을 기웃기웃하게 되는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무성한 가지가 터널처럼 에워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자박자박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이자 쉼이 된다.

◇죽기 전에 꼭 걸어봐야 할, 한국의 아름다운 길



담양 걷기의 첫 발걸음은 금월교가 좋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걷다 학동교를 건너 관방제림을 따라 죽녹원까지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약 5㎞ 남짓한 거리라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반이면 넉넉하다. 담양의 문화생태 탐방로인 ‘오방길’ 중 ‘황색로드’에 해당하는 길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1970년대 초 전국적인 가로수 조성 사업 때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어 가꾸면서 조성됐다. 국도 24번 확대포장 공사로 사라질 뻔한 위기가 한 번 있었지만 담양군민들이 도로 노선을 변경시키는 노력으로 지켜낸 덕에 한해에 47만여 명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명품 숲길’이 됐다. 2012년 유료화 이후 거둔 입장수익금으로 관내 고등학생에게 장학금까지 지원하고 있으니 담양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잎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봄도, 짙은 녹음을 자랑하는 여름도, 단풍만큼이나 붉은 잎을 우수수 흩뿌리는 가을도, 가지마다 설화가 피어오른 듯한 겨울도 좋다.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치장하지 않고 발가벗고 있을 때도 멋지다. 올곧게 솟아오른 기둥과 하늘을 향해 팔 벌려 쭉 뻗은 가지들의 단순한 선 덕분이다.

2011년에는 포장을 걷어내고 흙길을 깐 덕에 산책길로는 더 바랄 것이 없어졌다. 가을을 보낸 메타세쿼이아가 새의 깃털과도 같은 붉은 잎을 넉넉하게 깔아놓아 이듬해 봄까지 푹신한 융단 위를 걷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돌멩이 하나 발에 채일 일 없는데다 평탄하지만 대나무로 만든 장승, 나무 조각들을 구경하면서 평소 걸음 속도보다 느긋하게 걸을 일이다. 물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저만치서 끝이 보일라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길가 매점에서 커피 한 잔 사다 원두막 쉼터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볼 수 있다.

◇관방제림 거쳐 녹빛 향연의 쉼터로



담양천변 제방 위 가로수길이 관방제림이다. 메타세쿼이아와 달리 바람 탓인지, 제 성질 탓인지 구불구불 몸통과 가지를 한껏 비틀어 뻗은 모습이 분재를 한 것만 같다. 느티나무부터 푸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 수령 200년이 넘는 다양한 나무들이 식재돼 있다. 2㎞ 거리의 이 길도 2004년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길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늦가을의 정취였다면 관방제림에선 갑자기 날린 눈발로 겨울로 넘어온 듯 하다. 그러다 죽녹원에 닿자 하늘이 개면서 대나무숲으로 주위가 온통 푸르니 계절을 또 훌쩍 뛰어넘어 봄에 닿은 듯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산림욕이 아닌 죽림욕은 담양에서만 즐길 수 있다. 담양군청에서 대밭을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한 죽녹원은 규모가 15만5000㎡에 달하는 울창한 대숲이다. 죽림욕을 즐기면서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운수대통길, 사색의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길 등 8개의 길이 조성돼 있다. 총 길이가 2.4㎞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대숲에 들어서면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너끈한 대나무들이 하늘에 닿아있다. 이토록 곧고 단단한 줄기와 사철 푸른 잎을 가진 대나무가 실제론 나무가 아니라 풀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쭉쭉 뻗은 대나무는 그 자태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다.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서도 대나무에 대한 이런 감탄이 드러나 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철을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중국에서는 사군자 중 대나무가 가장 먼저 시와 그림의 소재가 됐으며,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는 시험에서도 대나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하는 것만 봐도 대나무는 사군자 중 으뜸이었다.



대나무는 자태도 아름답지만 바람에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길쭉한 잎들이 서로를 부비며 쏟아내는 소리 또한 아름답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귀를 쫑긋 세우노라면 형용할 수 없이 청량한 그 무언가가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 붓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온 몸을 씻어내는 듯한 개운함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계절과 상관없다.

담양의 대숲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운수대통길-사색의길-사랑이변치않는길-철학자의길-선비의길을 지나 다시 사색의길을 거쳐 죽마고우길까지 크게 한 바퀴 돌면 된다. 빠뜨린 길 없이 두루 둘러보는 도중에 정자, 쉼터, 놀이터에서 머무르며 다리쉼을 해도 되고 곳곳에 앙증맞게 자리한 팬더상과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도 잔재미가 있다. 참고로 팬더들은 주로 연못 옆에 자리하고 있다.



죽녹원 뒤편에 조성된 죽향문화체험마을에는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광풍각 등 담양 곳곳에 산재된 누정을 축소시켜 만들어 놓았다. 이곳저곳 둘러보지 않고 한 자리에서 누정들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이다. 민박으로 활용하는 한옥에서 하룻밤 머문다면 다음날 아침 죽녹원이 통째로 나만의 정원이 된다.

[가는 길]= 남도여행은 고속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티켓 ‘EBL PASS(Express Bus Line)’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금호고속과 제휴를 해 금호고속 전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광주를 허브로 전라도 전역 직행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에서 담양으로 바로 가는 직행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시간이 맞지 않다면 광주로 이동해 담양행 직행버스를 타면 된다. 평일동안 이용가능한 주중권과 주중주말 다 이용할 수 있는 주말권 두 종류가 있다. 예약 및 문의는 EBL PASS 홈페이지(www.eblpass.co.kr)를 참조하면 된다.



[주변 볼거리]





△한국가사문학관= 담양은 조선 중기부터 20세기까지 600여 년 동안 가사문학이 융성했던 터라 ‘한국가사문학의 산실’로 불린다. 또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 발전을 위해 2000년에 한국가사문학관을 개관했다. 담양권의 가사문학 자료와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물을 비롯해 영남 규방가사, 기행가사, 유배가사 등의 원본 및 필사본 등도 수집 전시해 놓아 교과서에서 배운 작품들을 실제 둘러볼 수 있다.



△슬로시티 창명편 삼지내 마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 마을은 과거와 현재가 잘 조화돼 있다. 백제시대 형성된 마을로 월봉천, 운암천, 유천이 마을 아래에서 모인다고 해서 삼지내라고 이름 붙었다. 마을 한 가운데 전통 가옥과 아름다운 돌담이 잘 보존돼 있어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 돌담을 따라 수로가 흐르고 담장 너머로 고택과 그에 딸린 정원을 기웃기웃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대문마다 특색 있고 아기자기한 문패며 장식이 걸려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숙박시설과 함께 창평의 슬로푸드인 전통 장류, 창평쌀엿, 한과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먹거리]

△떡갈비= 떡갈비는 담양의 먹거리 중 이를 빼놓고는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인절미 치듯 갈비살을 곱게 다져 끈기가 나도록 치대 만들기 때문에 떡갈비라 부른다. 다져서 양념한 갈비살을 갈비뼈에 도톰하게 붙여 석쇠에 앞뒤로 발라가며 타지 않게 구워야 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다른 갈비요리와는 달리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이라 남녀노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4대째 이어오는 신식당도 주변 찬거리보다 메인 요리인 떡갈비에 집중해 내놓는 곳이다.

△창평면 돼지국밥= 500년 전통을 가진 창평시장 안에 돼지국밥 식당이 모인 창평국밥거리가 있다. 과거 창평에 도축장이 위치해 국밥의 재료인 돼지 부속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창평장에 국밥거리가 형성됐다고 한다. 뽀얗게 우려낸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개운한데다 순대와 내장이 그득하게 담겨져 인심도 넉넉하다. 7개의 국밥집이 저마다 손맛이 다른데다 순대국밥, 선지국밥, 머리국밥, 내장국밥, 새끼보국밥, 콩나물국밥 등 종류도 다양하다.



담양=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 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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