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엘사, 왕자 따윈 필요 없어

'겨울왕국' 엘사, 왕자 따윈 필요 없어

기사승인 2014-02-11 17:27:00

[쿠키 연예] ‘겨울왕국’의 ‘엘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가장 매력적인 공주다. 짙은 보라색 눈 화장,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드레스, 한쪽으로 땋아 내린 풍성한 헤어스타일. 외모도 눈에 띄지만 엘사의 진짜 매력은 세련되고 멋진 성격에 있다.

동생 안나가 한눈에 반한 이웃나라 왕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방금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라고 잘라 말하는 장면에선 통쾌함이 느껴진다. 디즈니가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을 부정하는 듯한 말투여서다.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생각해보라. 백마 탄 왕자가 구해주거나, 왕자의 키스가 있기 전까지 공주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뿐인가. 엘사는 원치 않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 잊어 다 잊어/ 더 이상 참지 않아/ 다 잊어 다 잊어/ 나는 이제 떠날래”라며 어깨를 곧추세우고 당당하게 눈 위를 걸어간다. 능력을 숨기고, 착한 아이로 살아가라는, 그래서 성 안에만 꽁꽁 숨어 살았던 엘사는 여왕 대관식 날 모든 걸 내려놓고 유유히 북쪽 산으로 떠난다. 주제곡 ‘렛 잇 고’를 부르며 마법을 이용해 얼음 궁전을 만들고,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장면에선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왕자를 만나 사랑을 이루는 게 아니라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 그것이 엘사가 지향하는 삶이다.

안나 역시 독립적이다. 말괄량이 공주 안나는 언니를 설득하고 왕국을 구하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난다. 왕자는 궁전에 남겨두고 혼자서 씩씩하게. 반전도 있다. 목숨을 살릴 ‘진정한 사랑’은 왕자의 키스가 아니었고, 믿었던 왕자는 심지어 ‘나쁜 놈’이었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겨울왕국’은 곧 8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인기 요인이 있겠으나 핵심은 이데올로기, 독립적인 여성상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던 그간의 공주 캐릭터를 걷어 차버린 것이다.

800만명 가량이 이 영화를 선택한 데는 의식하건 안 하건 그런 이유가 깔려 있다.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구조, 은연중 당연시되어온, 그래서 여성만 힘든 게 아니라 남성도 피해자인 그런 구조가 무너지는 통쾌함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엘사로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 최근 정부는 ‘일하는 여성의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임신과 출산을 겪은 직장여성들이 육아문제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현실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핵심은 남편의 육아휴직 사용 장려. 여성에게 쏠려있는 육아의 부담을 남성이 나눠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첫 달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확대하고 한도도 150만원으로 상향한다는 방안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따져보면 몇 십 만원 더 주겠다는 정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그동안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못했던 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법보다 위에 있는 ‘회사 눈치보기’가 그것이다. 정기휴가를 제대로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 직장 분위기에서 육아휴직을 내고 마음 편할 가장이 몇 명이나 있을까.

엘사 같은 여성이 많아지려면 사회적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육아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함께 기업의 인식변화가 우선이다. ‘겨울왕국’의 흥행 바람을 타고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여성에 대한 배려도 함께 깊어지길 바란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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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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