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전명규, 메달 780개 따낸 ‘쇼트트랙의 대부’
전 부회장은 학창시절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한체대 4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선수로선 무명이었지만 지도자로선 탁월했다. 1987년 쇼트트랙 대표팀을 맡은 이후 2002년까지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 정상에 올려놨다. 이는 기록이 말해준다. 그가 코치·감독이었던 15년간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딴 메달은 780여개에 달한다. 1992년 알베르빌에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까지 4번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를 목에 걸었다.
한체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서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남다른 지도력을 발휘했다.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 이강석 등이 그의 제자다.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이 한때 길을 잃고 방황할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바꾸도록 제의한 사람이 전 부회장이었다.
빙속 경기의 각종 전술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전 부회장은 한국 선수 여러 명이 결승에 올라갔을 때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팀플레이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안현수가 토리노에서 금메달을 딸 때 은메달에 머문 이호석이 “내가 다른나라 선수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승선에서 발 들이밀기’는 빙상 책에 있는 기술을 활용했고, ‘계주에서 반 바퀴 더 돌아 교대하기’는 계주 훈련에서 영감을 얻어 실전에 도입했다.
파벌싸움의 배후로 지목…‘사면초가’
특정 선수에게 ‘올인’하는 전 부회장의 지도 방식은 성적이 좋을 땐 척박한 환경에서 챔피언을 키워낸 묘책으로 칭찬받았다. 하지만 부진할 땐 선수 차별, 승부 담합·조작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에이스’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다른 선수들의 불만도 점점 커졌다.
전 부회장이 과거 16세 안현수를 발탁할 때 ‘반대파’ 선수들과 알력이 생긴 것도 그런 이유다. 그가 에이스를 선택하는 권한을 갖다보니 그를 둘러싼 ‘한체대파’와 반대세력이 생겼다. 선수 실력보다 진영 논리가 우선하고 측근이라는 이유로 우선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올해 초 “성추문 전력의 코치가 대표팀에 발탁된 배후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교수의 힘이 작용했다”고 폭로했다. 한때 안현수를 발탁해 키운 전 부회장은 이제 안현수쪽의 집중 성토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다.
전 부회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어느 종목에서든 파벌은 있다. 쇼트트랙은 종목 특성상 몸싸움을 하고 주관적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귀국 후 정부 감사의 핵심 대상이 될 전망이다. 그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어떤 식으로 결론날지 주목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