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하고 싶으면 현금 2억 가져와… 납품업자 자살부른 공항공사의 甲질

수주하고 싶으면 현금 2억 가져와… 납품업자 자살부른 공항공사의 甲질

기사승인 2014-04-16 20:25:00
[쿠키 사회] 한국공항공사 R&D 사업센터 최모(43) 과장은 2009년 가을 통신장비업체 T사 대표 A씨에게 검은 거래를 제안했다. ‘사업을 수주하려면 현금 2억원을 달라. 안되면 다른 업체를 찾아보겠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계약 체결 후 선급금을 지급받으면 2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공항공사는 전술항행표지시설(TACAN·항공기에 지상과의 거리, 방위 정보 등을 제공하는 시설)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A씨는 대형 계약을 따냈지만, 이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T사는 공항공사가 2009년 12월 발주한 TACAN 개발 사업(총 56억원 규모)을 낙찰 받았다. A씨는 그 다음해 2월 최 과장에게 1억2000만원을 우선 건넸다. 최 과장은 2009년 5월~2010년 5월 경기도 일산 등의 고급 룸살롱을 17차례나 드나들며 A씨에게 술값 2100여만원을 내게 했다. 2009년 9월에는 나흘 연속으로 룸살롱을 출입하기도 했다.

최 과장은 2010년 9월 공항공사 사무실에서 A씨로부터 50만원 짜리 기프트 카드 14장(7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상관인 이모(50) 부장에게 “T사가 준 명절 선물”이라며 이를 전달했다. 이 부장은 이 중 4장을 김모(57) 센터장에게 상납하고, 최 과장에게 4장을 줬다. 자신과 다른 이모(53) 부장의 몫으로 3장씩 나눠가졌다. A씨는 2011년 설과 추석에도 기프트 카드를 선물했다. 모두 44장 2200만원 어치였다. 센터장 이하 4명은 매번 카드를 분배해 골프장, 대형마트, 학원 등에서 사용했다.

이들은 해외 출장을 갈 때도 T사를 동행시켜 경비 일부를 부담시켰다. 최 과장은 T사를 시켜 자신의 박사 학위 지도교수에게 4000만원 짜리 연구용역을 의뢰토록 하기도 했다. 공항공사는 2009년 직무와 관련해 100만원 이상의 금품·향응을 받으면 바로 해임·파면하는 자체 징계 규정을 만들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A씨는 이 같은 부당한 요구와 횡포를 견디다 못해 지난해 10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유서에 “이 사업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내용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자살한 이후에야 공항공사 직원들의 ‘갑(甲)질’이 주변에 알려졌고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문홍성)는 16일 최 과장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하고, 기프트 카드를 나눠 쓴 간부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공기업 직원들이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고 이를 상관에게 상납하는 식의 먹이사슬 같은 비리 구조가 재확인됐다”며 “공공기관의 부패를 지속적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지호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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